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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을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5. 1. 12. 15:32
봉준호, 2003 1.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는데, 우리나라에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작품 한 편만 선택해 주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아마 <살인의 추억>이 1위를 할 것 같다. 이 유명한 영화를 아직도 안 본 나한텐 제목 만으로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한국 영화를 상징하는 감독 봉준호의 대표작 <살인의 추억>. 드디어 봤다.
2.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라고도 칭해지는 2003년 작품이다. 그때 내 나이가... 사는 게 마냥 행복했던 초등학생쯤이었으니 이런 영화들에 눈이 갈 리가 없었지. 그래서 그 유명한 "2003년 한국 영화" 중에 이 영화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내가 대외적으로 영화 좋아한다고 티는 많이 내는 주제에 이렇게 대놓고 유명한 영화도 아직 안 보고 그래서 좀 민망할 때가 있단 말이야. 그렇다 보니 약간 숙제처럼 고른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너무 유명한 영화다 보니까 얼추 줄거리도 대충 알고.
3.
하지만 명불허전. 역시 좋은 영화는 어떻게 봐도 좋은 영화야. 봉준호 감독 특유의, 어찌보면 진짜 사람 참 냉혈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냉소가 철철 흘러넘치는 영화였다. 나쁜 의미 아닙니다.
4.
1980년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 사건과 그것을 수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 수사 과정에서 얻어 터지고 심지어 죽어버리기까지 하는 애꿎은 피해자들과 점점 피폐해져 가는 형사들이 그려지는 영화는 끝내 범인을 잡지도 특정하지도 못한 채 끝나버린다.
5.
이 영화는 외부를 어둡게 덮고 있는, 그 세계 내부에선 보이지 않을 악역과 영화 내부의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악역들로 이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형사들은 살인범을 잡는다는, 원론적으로는 정의롭다고 볼 수 있을 일을 위해 고군분투 함에도 그들은 결국 악역인 것이다.
6.
이런 영화의 구조는, 이 영화가 단순히 그 악독한 살인범과 난폭한 형사들을 비웃는 것으로 끝나지 않게끔 만들어 줬다고 느껴진다. 거칠고도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 시대의 풍경들과 교묘히 섞여 들어간 역사 속의 실제 사건들까지 더해 이 영화가 비웃고 있는 것이 작품 속 세계 그 보다 더 넓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7.
그래서 서태윤이라는 서울에서 온 형사가 어찌 보면 송강호의 박두만 보다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인물이라고 느껴졌다. 이 시대 속에선 이런 인물까지 이렇게 붕괴해 버린다는 게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8.
흉악범을 길러낸 시대를 기억하라
그런 의미에서 박평식 평론가가 적은 한 줄 평이 참 인상 깊더라고. 영화의 제목이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이 어떻게 추억이 될 수 있을까. 현세대로부터 아주 멀지도 않은 시기에 이렇게 폭력적인 세상이 있었음을, 그걸 기억하라는 말 같다. 그걸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그것을 미화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진짜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제목인거지.
9.
이 영화 계속 언젠간 보리라 간만 봐온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약간 후련하기도 하다. 예전에 올라왔던 이동진 평론가 유튜브 영상도 아직까지 안 보고 있었는데, 감상문도 다 썼으니 그 평론 영상 이제야 볼 수 있겠다.
인상 깊었던 장면 1 이 영화는 뭐랄까. 잔인하고, 적나라하고, 더럽다. 좋은 의미로. 이 고기 구워 먹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컷이 좀 특히 그랬어. 이 사진만 있어선 부족하고 이 직전 프레임에서 이어지는 느낌이 인상 깊었는데 그걸 올리기엔 난 항상 이 블로그를 전체 이용가로 유지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근데 이 고기 자체도 유독 시뻘건 데다 육즙인지 핏물인지도 유독 질퍽거릴 것처럼 많아 보여서 좀 기억에 남았다.
인상 깊었던 장면 2 항상 이 인상 깊었던 장면 고를 땐 심술이 좀 발동이 되어서, 누구나 대표 장면이라고 뽑을 장면들은 은연중에 좀 덜 고르게 되더라고. 근데 이 장면은 빼놓기엔 좀 미안할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감정적이면서도 싸늘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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