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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를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4. 12. 15. 12:38
도로타 코비엘라 · 휴 웰치먼, 2017
0.
사실 어제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을 직관했기 때문에, 또 그리고 당장 오늘 오후에 약속도 있기 때문에 영화를 한 주 쉬려고 했으나 마침 골라 놓은 영화가 아주 짧아서 그냥 보기로 했다. 근데 시간을 보아하니 글을 빨리 쓰긴 해야겠군.
1.
<러빙 빈센트>. 유명한 작품이다. 아마 본 사람 수에 비해 더 유명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헌정작으로서, 1시간 30분 가량 분량의 모든 장면을 그의 화풍을 따라한 수작업 유화로 그린다는 몹시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해 낸 영화다. 제작 기간만 5년이 넘게 걸렸다고.
2.
근데 그에비해 스토리는 좀 약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하더라. 이 압도적인 개성을 빼놓고 만약 이게 그냥 평범한 실사영화였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싶어지는 느낌.
3.
근데 개인적으로는, 스토리도 마냥 이상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고흐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듯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자기 연민이 많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거든.
4.
사실 잘 몰랐다가 막바지 쯤에야 알아차렸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고흐가 실제로 그린 초상화를 기반으로 창작된 캐릭터들이고, 그 인물을 통해 초상화를 오마주 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 크레딧에서 그 장면들을 다시 보여주는데, 동시에 그 인물이 고흐에 대해 남긴 말들도 보여주더라고. 그중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었다.
그는 모든 감정을 느꼈다, 가없은 빈센트!
너무 많이 느꼈다. 그것이 그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페르 탕기 -
5.
고흐의 그림이 주는 복잡하고 휘몰아치는 감정들, 그리고 고흐의 죽음이 남긴 미스터리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정말 정확한 단평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예술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현실에서, 그냥 친구랑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아니면 혼자 일기에 오늘 있었던 일을 나열하면서는 도저히 내뱉어지지 않고 가래처럼 엉켜서 남아있는 감정들이 있거든. 고흐 같은 인물은 그게 너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밖에서 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많았던 것이고, 몇 가지 일을 전전하다가 결국 비교적 늦은 나이 일지라도 화가의 길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6.
하지만 그 그림이란 것은 결국 작가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상의 인터페이스 혹은 그걸 투영한 것에 불과한 것.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본질까지 이해하기란 결코 불가능하겠지. 이 영화의 줄거리가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고흐의 작품을 보며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듯, 고흐가 죽기 직전 몇 주간의 일에 대해 여러 주변 인물들이 말을 더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감상적인 형태로 갈무리하는 것이 좋았어.
7.
아무튼 이렇게 복잡할 것 없이 그냥 시각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영화였다. 유화 애니메이션이라니...
인상 깊었던 장면 사실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나 웨스 앤더슨 영화 처럼 어느 컷이나 가져와도 다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긴 하다. 이 장면 같은 경우는, 내가 뒤늦게 초상화 오마주를 하고 있단 걸 알아차린 장면이라서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 인물이 어떻게 보면 주인공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했으니, 마침내 이렇게 등장하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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