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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든 생각
    일요감상회 2024. 4. 14. 13:08

    하마구치 류스케, 2021

     

    1.

    난 3시간짜리 영화가 싫다! <드라이브 마이 카> 이거 한 편 보겠다고 알람을 6시에 맞춰놓고, 그마저도 제대로 못 지켜서 7시 반에 겨우 일어나 밥을 대충 차려 먹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오전이 훌쩍 가버린다. 3시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라도 영화를 틀지 못하면 그냥 포기해 버릴 정도의 벽으로 내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3시간짜리 영화가 가장 싫은 이유는, 막상 영화를 보면 그 시간이 너무나도 납득이 되고 그 영화에 너무나도 강하게 경도된다는 것.

     

    2.

    아무튼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해선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누누이 들어왔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 영화계에 대해서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아는데 하마구치 류스케도 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있고... 아주 든든 하구만.

     

    3.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무래도 미야자키 하야오 때문에, 적잖이 봐왔지만 실사 영화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적게 봐왔다. 이번 <드라이브 마이 카> 말고는 당장 떠오르는 게 없는 수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있구나. 아무튼 뭔가 나쁜 편견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실사에서 애니에서나 볼 법한 톤이 나오면 상당히 싫어하는 경향이 나한테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만 짚자면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일본의 다른 좋은 영화들도 그럴 리 없겠지 그래.

     

    4.

    아주 감동적인 영화였다. 아주 쓸쓸한데, 그 끝에 작은 희망이 보이는, 그리고 또 그 희망이 막연히 크지만은 않은. 개인적으로 또 다른 내가 아주 강하게 경도되었던 영화 <마스터>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외견에서 막연히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감상을 받았는데 막상 다 보고 나면 몸속 깊숙한 곳이 따뜻해지는듯한 영화.

     

    5.

    각 배우들의 모국어로 연기를 하는 연극무대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한중일의 배우와 언어가 모두 작위적이지 않은 형태로 등장하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디어가 영화의 설득력을 더 증폭시켜줬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언어가 외국의 수어라는 점이. 마치 감정이 언어를 초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

     

    6.

    감정이 초월하는 것을 "언어"라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주인공 가후쿠의 내면에서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았을 어떤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인물들이 상호작용해 그것에 부딪히며 주인공으로부터 끄집어내 주는 듯한 느낌. 작중 연기 리허설을 하는 두 배우를 보고 연출가인 주인공은 "무언가가 일어났다"라고 표현했다.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7.

    영화에서 한국이 중요하게 나온다. 영화는운전기사 미사키가 "메가 마트"에 들려 한국어를 말하며 장을 보고 한국의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떠나는 모습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한층 가벼워진 표정을 한 채로. 뭔가 후련해지기도 하는 그런 엔딩이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 장면이 조금 신기하게도 느껴졌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찾아보기까지 했다. 결국 해석의 몫은 나 자신에게 있기에 명확한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그냥 엔딩 자체가 앞으로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아.

     

    8.

    영화의 배경이 히로시마인 것도 좋은 의미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히로시마라는 도시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 영화는 지나가듯이 그것을 언급할 뿐이지만. 아무런 의도 없이 그곳을 선택하진 않은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백스토리를 조금 찾아보니 사실 원래 영화를 찍으려 했던 장소는 우리나라 부산이었다고 하더라. 쳇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9.

    하마구치 유스케의 전작 중에 <해피 아워>라는 영화는 러닝 타임이 5시간이나 된다고 한다. 대체... 왜.. 그런 짓을...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언젠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얼마 전에 국내에 개봉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도 예고편을 봤는데 기대가 되더라. 물론 당연히 영화관에 가진 않았지만. 지금 찾아봤는데 이건 1시간 46분밖에 안 하네. 괜찮을지도 ㅎㅎ...

     

    10.

    이 감독뿐만이 아니라 일본 영화들에 대해서도 좀 더 도전을 해봐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그 남자 흉폭하다>라는 영화가 제목이 아주 인상 깊어서 계속 눈이 간다.

     


    인상 깊었던 장면 1

    주인공 가후쿠 역의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 내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혼란에 빠져있는 듯한 표정이 인상 깊었다. 이 장면은 40분이나 되는 이 영화의 프롤로그 부분에 나온 장면. 사실 여기 말고 진짜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 잘 드러난 장면이 앞에 있는데, 내 블로그를 전체 이용가로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걸로 골라봤다. 사실 이 장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요소들이 많기도 하고.

    인상 깊었던 장면 2

    한국 수어를 쓰는 배우를 이야기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사실 이 오디션에서 참가자가 수어를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순간 살짝 의구심도 들었는데, 그 의구심을 바로 지워버리는 연기를 보여주더라. 표정도 표정이고, 수어를 하는 팔의 동작이 아주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중간중간 숨을 뱉거나, 손을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가감 없이 들려주는 연출이 아주 인상 깊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3

    이 영화의 가장 사고뭉치에 해당하는 인물인데, 이 장면에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며 핵심을 찌른다. 불륜도 하고, 실수겠지만 살인도 저지르는데, 굳이 이 인물에 대해 선악을 따질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해야 할까. 물론 따지자면 나쁜 사람에 해당하겠지. 말 그대로, 그걸 굳이 따질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좋은 이야기엔 이렇게 악인이 굳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 <기생충>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그 유명한 자평이 있잖아. "광대가 없는 희극, 악인이 없는 비극"

    인상 깊었던 장면 4

    아무튼 인생은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다 완전히 꺼져버려도 램프의 불꽃은 계속 타오르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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