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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3. 5. 29. 20:45
폴 토머스 앤더슨, 2002 1.
폴 토머스 앤더슨, PTA. 작품성을 인정받는 감독 중에서도 특히 마니아가 많은 것 같은 감독이다. 대신 대중적인 인기는 글쎄,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을 때 알만한 작품을 고르라면 애매하긴 하다. 나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한 명이었지만, 몇 달 전 《팬텀 스레드》를 봤을 때쯤에 나도 PTA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 감독 영화를 시작한 게 하필 《인히어런트 바이스》였다. 그때 당시 유튜브에서 봤던 예고편이 묘하게 끌렸었다. 재밌긴 한데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렸던 게 이후 영화들에 대한 나의 좋은 감정에 비해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 원인이 아니었을까.
2.
이번 영화는 앞서 말했듯이 PTA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나서 처음 시도한 비교적 초창기 작품이다. 정확한 구분선이 있는건 아닌데 《데어 윌 비 블러드》 이전 영화는 왠지 선뜻 시도하기는 망설여지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벽?
3.
첫 문단의 길이가 꽤 길게 나온걸 보면 이번엔 영화를 보기 전부터 들떴던 것 같다. 일단 이름에서 반하고 들어갔다. 《펀치 드렁크 러브》, 뭔가 따듯하면서 멍~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솜사탕 같은 느낌.
4.
그리고 영화는 갑자기 "눈알을 파먹어버리고..." 라는 대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대사도 대사인데, 처음부터 영화가 나를 괴롭힌다.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고, 소리도 갑자기 확 튀면서 귀를 찌르질 않나.
5.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스트레스가 쏟아진다. 특히 여자 형제만 7명인 집에 문을 완전히 열고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파묻혀 버릴 것 같은 그 대화들. 으으. 뭔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렵게 찾은 대화 상대들은 모두 주인공을 배신한다.
6.
초반부에선 영화가 좀 불친절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대사들도 에.. 뭔 소리 하고 있는 거지... 싶었는데, 점점 이것저것 맞춰지며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하고 보니 이거 진짜 펀치 드렁크 같네.
7.
주인공은 영화에서 일부 장면만 빼면 단벌신사로 등장한다. 진한 파랑색 양복. 튀는 듯, 튀지 않는 듯. 그러면서도 아주 직설적이다. 파란색이라니. 심지어 여주인공은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주인공과 데이트를 한다. 근데 이렇게 직설적이고 쉬워 보이는 색으로 대비를 주면 쉬워 보이고 얕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밉지 않으니 왜일까?
8.
억눌려 있고, 화를 통제하지 못하던 주인공은 하와이로 훌쩍 떠나 여주인공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온 뒤부터 막히는 것 없이 행동한다. 겁에 질려 도망가던 빼빼 마른 깡패들을 한주먹에 때려눕히고, 자기를 괴롭히던 악당과 직접 담판을 지으러 간다. "난 사랑에 빠졌어,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지". 진짜 사랑의 힘이구나. 사랑의 힘이라니, 유치해! 근데 밉지 않으니 왜일까?
9.
하와이에서 두 남녀가 만나는 장면 이후론 계속 실실 웃고있었던 것 같다. 그냥 기분이 왠지 그랬고. 중간중간 웃긴 장면이 있기도 했고.
10.
OST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영화가 계속 신경을 건드리다가 포근하게 감싸줘야겠다 싶을 때 아주 착실하게 감싸주는 OST를 틀어준다.
12.
풍금과 푸딩은, 뭔가 키 아이템인 듯 아닌 듯. 맥거핀인 듯 아닌 듯. 처음엔 갑자기 등장한 이 풍금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건가 싶었고, 푸딩 사서 모은 마일리지로 하와이 비행기를 사는 건가 싶었는데 둘 다 딱히. 하지만 결말에선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사과하며 푸딩 마일리지 이야기를 하고, 장면이 넘어가며 여주인공이 풍금을 치고 있는 주인공을 안아주며 끝난다. 오묘했다.
13.
《팬텀 스레드》에서도 느꼈지만. 진짜 변태야 변태. 각본도 감독이 썼더라.
14.
내가 아주 좋아하는게 있으면 남들에게 퍼뜨리고 다니는 성격인데, PTA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장면 1 하와이에서의 재회. 포스터에도 쓰였다. 그림자로 그려진 두 남녀의 실루엣. 그리고 따뜻한 음악.
인상 깊었던 장면 2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은 여러 영화에서 만날 때마다 항상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이다. 너무 좋아하는 배우다. 더 많은 영화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 이번 영화에서 등장은 많지 않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빵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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