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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을 보고 든 생각
    일요감상회 2023. 6. 4. 17:30

    호소다 마모루, 2005

     

    1.

    내가 존경하는 일본인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나머지 한 명은 오다 에이치로. 만화 《원피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주변인들 사이에서도 유별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원피스 악귀가 따로 없지. 마치 독실한 신자가 품에서 성경을 꺼내 읽듯이 나는 틈틈이 원피스 e북을 꺼내 읽는다

     

    2.

    하지만 만화 원작을 좋아하는 만큼 TV 애니메이션을 싫어한다. 애니메이션 초창기까지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싫어한다기보단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수십 년 동안 매주 일요일 아침 한 편씩 만들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TV 애니메이션에 대한 불만은 여기까지만.

     

    3.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를 소재로 유능한 연출가 호소다 마모루가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다. 이거 안보고는 못 참지. 다만 어릴 때 OCN 같은 채널에서 이 영화를 틀어줬던 걸 본 기억은 있다. 물론 영화 채널에서 본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듯 항상 중간부터 봤었던 것 같다.

     

    4.

    재치있는 연출들이 많았던 것 같다. 처음 동료들이 나올 때 장면이나, 중간중간 호흡을 빠르게 가져가는 편집들. 오마츠리 남작의 동료들이 사라질 때의 묘사 등등.

     

    5.

    영화를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여느 때의 《원피스》처럼 밝은 초반부, 슬슬 싸해지기 시작하는 중반부, 기괴할 정도로 어두워지는 후반부. 영화를 감싸는 이 불쾌한 분위기가 적잖은 호불호를 만들었다더라. 확실히 위에 올린 포스터와는 다른 영화였다. 포스터 사기로 유명한 영화들이 대부분 국내 배급사의 판단으로 그런 포스터를 만드는데 이건 원래 포스터 자체가 저렇게 밝게 나온 거라 조금 아쉬운 부분.

     

    6.

    《원피스》를 좋아하고 원작 만화를 많이 본 사람일수록 이 영화에서 동료들의 행동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조로와 상디가 원래도 자주 싸우는 것은 맞지만, 저렇게 진지하게 묘사하는건 좀 이상한데. 나미가 저 상황에서 우솝한테 진짜 삐져서 뺨을 때리고 꽁해져 가지곤 말도 안 하고 있을 줄이야.

     

    7.

    중반부에서 이 갈등을 만드는데 집중하느라 정작 주인공 루피가 붕 뜨는듯한 느낌을 주는건 아쉬웠다. 루피의 성격상 악역에게 분노하는 게 이상한 전개는 아니지만, 조금 더 둘이 부딪히거나 교류하는 모습이 나왔어도 좋지 않았을까. 둘의 갈등은 후반부에서 불이 붙어 바로 끝나버린 것 같다.

     

    8.

    오마츠리 남작과 그에 대한 설정이 아주 좋았다. 오마츠리 남작은 가벼운 사람 처럼 말하고 표정을 짓지만 동료를 전부 잃었다는 과거의 상처로 뒤틀린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악인이라기보다는 입체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 캐릭터에 주인공 보다 더 몰입하게 된 것 같다. 결말에서의 독백이 참 짠했다.

     

    9.

    다만 영화 후반부에서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색채가 느껴지기도. 무슨 말이냐면, 오직 염원만으로 이야기를 해결한다는 느낌이다. 시종일관 "동료를.... 돌려줘...!!! 으아아아!!" 라고만 말하는 듯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특유의 쿠세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내 빅 데이터가 아직 미숙하긴 해서... 아무튼 이것도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해도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선 이런 느낌을 덜 받는 것 같다. 그 점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10.

    글을 쓰다보니 아쉬웠던 부분들이 술술 나오고 있다. 근데 영화가 그렇게 나빴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내가 《원피스》를 너어어무 좋아하다 보니까 기대치가 좀 더 올라간 면이 있지 않았나. 이 영화 이후로 《원피스》의 극장판은 원작의 스토리를 극장판으로 다시 각색하거나 오리지널 스토리라고 해도 팬서비스 성향이 강해진 것 같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유능한 감독에게 자유도를 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요즘 TV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연출가 중에 이시타니 메구미라는 유망한 감독이 있는데, 이 감독이 극장판을 한 번 만들어주면 좋지 않을까.

     

    11.

    또 개인적으로, 이건 이번 영화 보다는 《원피스》 자체에 대한 약간 오타쿠스러운 망상이기도 한데,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 워즈》 처럼 세계관 자체를 확장해 밀짚모자 해적단의 이야기 말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상당히 가치 있는 작품이고 설정들이라고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장면

    영화의 분위기가 확실하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분위기 반전을 만드는 이 시퀀스의 흡인력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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