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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를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3. 11. 26. 15:50
류승완, 2008 1.
매주 첫 문단은 사담으로 시작하는 것이 국룰. 문득 든 생각인데 "국룰"이란 단어도 조금 올드하지 않나? 아무튼, 오늘은 특히 사담이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새벽 늦게까지 뭐 좀 하느라 약 4~5시간 남짓, 주말답지 않게 부족한 수면으로 인해 몽롱한 상태에 아침을 겨우 챙겨 먹고 8시에 영화를 꾸역꾸역 봤다. 원래 보려고 했던 《매그놀리아》는 무슨 3시간이나 한다길래 급하게 리스트에서 러닝 타임이 짧은 영화를 찾으면서까지. 그렇게 영화를 약 1시간 30분 만에 끝내고, 출장 때문에 오후 1시 기차를 타고 대전엘 와서 지금 오후 3시쯤 대전역 근처 무슨 하천이 보이는 카페에서 오늘 영화 리뷰를 쓰고 있다. 다음 일정이 오기까지 타임어택으로 빨리 써야겠다. 이렇게 빡빡한 일정이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구먼. 아직 일정이 많은데 아주 피곤해 죽겠네.
그래도 뷰가 나쁘진 않음 2.
아무튼 위에서 영화를 너무 대충 고른 것 처럼 이야기했는데, 이번 영화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긴 했다. 리스트에 넣은 지가 좀 되어서 비교적 깊은 곳에 들어 있던 영화인데, 이번에 상영시간순 정렬을 하면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을 뿐. 풍기는 이미지가 지금 이 몽롱한 정신상태에서 소화하기에 괜찮아 보이기도 했고.
3.
류승완, 2000 제목이 길어서 글에서 언급하기 부담스러운 이번 영화는 감독의 과거 단편 《다찌마와 리》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저 강렬한 표정을 보라. 저 시뻘건 문구들을 보라. 어떤 기운을 풍기는 영화인지에 대해 굳이 더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리메이크된 포스터는 너무 세련됐어. 이런 거친 매력에 이끌렸던 것 같다.
4.
아무튼 이렇게 외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의도적으로 "옛날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재현한 영화다. 과장된 연기와 올드한 대사들, 배우의 입과 맞지 않는 후시녹음된 대사, 변사(辯士) 같은 느낌을 주는 나레이션도 있고. 그런데 또 그 와중에 액션이라던가, 아직도 먹힐 만한 유머 센스등을 보면 그냥 장난기 하나로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란 생각을 들게 한다.
5.
물론 조금 유치하게 다가온 유머 포인트들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은근히 찾기 힘든데 만족스럽군.
6.
류승완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에 자주 비유되는 것으로 알고있다. 왠지 그런 느낌이 있어. 이번 영화에서도 보면서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약간 영화란 매체 자체에 대한 애정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7.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사실 쿠엔틴 타란티노보다 더 많이 떠오른 감독은 주성치였다. 쿠엔틴 타란티노에 대응하기엔 조금 더 아마추어리즘의 맛이 강한 느낌. 물론 창작자로서 어찌 다른 이름들에 완전히 동치 될 수 있겠냐만.
8.
단편영화 원작도 보고 싶은데, 어디서 봐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은근 이런 영화들이 있어, 보고 싶어요 리스트에 들어는 있는데, 보는 수단 찾기가 어려워서 혹은 번거로워서 계속 미루게 되는 영화들.
인상 깊었던 장면 1 이 영화에서 임원희 배우의 표정은 정말 대단했다. 위 단편영화 포스터에서도 표정이 인상 깊었다. 세상에서 가장 웃긴 분노한 표정. 어떻게 이렇게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배우를 데려왔을까. 그리고 이 장면에선 류승범이 몰매를 맞으며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주러 가는 장면에서도 엄청 웃었다. 전체적으로 웃음의 순도가 높은 영화였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성룡 영화처럼 NG 장면을 모아서 보여주던데, 이 장면을 찍다 웃음을 터트리는 두 배우가 나오더라. 연기하기 엄청 어려웠을 듯.
인상 깊었던 장면 2 지금은 보기 어려운 조합. OST를 만든 리쌍이 카메오 출연을 했더라. 2008년이면 한창 악동 같은 이미지가 있을 시절이라 사람들도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듯. 개인적으로 00년대 후반~10년대 초반 시절의 《무한도전》을 너무 좋아하는지라 길의 모습이 특히 더 반가웠다.
인상 깊었던 장면 3 여기선 진짜 뜬금없어서 엄청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 내내 논리와 절차가 통하지 않는 듯한 기분. 근데 그게 좋은 거지. "아니 여기서 갑자기 왜 눈사람이 나와?"가 아니라 "앜ㅋㅋ 눈사람 ㅋㅋㅋ" 거리게 된다. 그리고 눈사람 귀엽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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