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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든 생각
    일요감상회 2023. 12. 17. 15:01

    션 베이커, 2017

     

    1.

    지난주 영화를 볼 때도 감기 기운에 고생을 했었는데, 사실 그 일요일이 이제 막 감기 몸살이 시작하는 순간에 불과했다. 이번 주 내내 나를 괴롭힌 독감은 살면서 겪은 독감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수준이었다. 지금 주말 들어서면서 조금 괜찮아지긴 했는데 컨디션이 완벽하진 않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보면서 막 헛구역질이 올라와가지고... 영화는 진짜 좋았고, 눈물도 많이 흘리고 그랬는데, 이게 영화 때문에 헛구역질을 한 게 아닌데 뭔가 내가 나중에 이 영화를 생각할 때 "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면서 토할 뻔했다."로 기억할 것 같은 걱정이 든다.

     

    2.

    아무튼.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보고 싶어요 리스트에 오랫동안 들어있던 영화였는데,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 탓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두울 수밖에 없는 배경인데, 저렇게 화사한 포스터와 장면들이라니.

     

    3.

    감독 션 베이커는 독립 영화 성향이 강한 감독인 것 같다.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좋은 영화들을 2000년부터 꾸준히 만들어 왔는데,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감독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영화다. 다시 말해 대표작. 보아하니 대중적인 인지도에 비해 마니아층이 있는 감독처럼 보인다. 꼭 그 감독의 열성팬이 되려는 건 아니어도, 영화들 중 유독 작품 뒤의 총책임자가 궁금해지는 영화가 있는데 이번 영화도 그런 감상이 들었다. 감독의 시각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 시각이 내 마음에 들고 계속해서 그 감독의 영화가 마음에 들면 그렇게 팬이 되는 거겠지.

     

    4.

    어두울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디즈니랜드(사실 엄밀히 따지면 월트 디즈니 월드라는 이름이긴 한데) 건너편 "매직 캐슬"이라는 후진 모텔에 투숙하는 홈리스 싱글맘과 그 딸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이 상처받고 망가지는 모습을 그린다.

     

    5.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배경이 되는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가 건설될 때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또 다른 의미로 홈리스를 구제하는 정부 보조금 사업의 이름도 "플로리다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저 특별한 악인을 두지 않은 채 불쌍한 한 모녀의 모습을 그릴 뿐이었지만 이런 제목의 배경이 영화를 존재 자체만으로 사회에 강렬한 비판을 던지는 작품으로 만드는 듯하다.

     

    6.

    개인적으로 영화 시작부터 조금 당황한 부분, 어린아이들이 내뱉는 거친 단어들.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하지만, 어.. 어떻게 촬영했지? 그래도 확실한 건 이런 모습 때문에 더 사실적으로 영화가 느껴지긴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이런 나쁜 환경에서 자라서 애들이 이렇게 버릇이 없지"라는 묘사가 아니라, 이 영화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이었다는 점에서 영화에 진정성이 담기지 않았나 싶다.

     

    7.

    그런 아이들의 시선을 묘사하는 듯 마냥 밝기만 한 색채들도 이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밝은 척하면서 본질적으론 우울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쌔게 먹혀. 다음 주엔 좀 밝은 영화를 봐야 할까 싶다.

     


     

    인상 깊었던 장면 1

    감독이 본인 작품에서 대부분 무명, 신인 배우를 기용하나 본데 이번 영화에서는 딱 한 명, 이름이 아주 많이 알려진 유명 배우가 등장한다. 윌렘 대포. 이름값을 하는 연기였는데, 이 인물이 이 영화에서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해석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그냥 유독 웃긴 것 같아서.

     

    인상 깊었던 장면 2

    쓰러져도 계속 자라는 나무. 그걸 아이가 직접 말하게 하다니, 씁쓸해지는 장면이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3

    여기서는 눈물을 진짜 많이 흘렸다. 이 장면 바로 다음에 나오는 엔딩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마지막 시퀀스는 디지털로 찍었더만, 웩!" (★)

    이분도 이 영화를 보고 헛구역질을 하는군. 아무튼 감독 본인도 이렇게 직접 언급한 엔딩. 사실 위 장면에서 펑펑 울고 갑자기 엔딩으로 그렇게 넘어갈 때, 나는 눈물을 쏟아내는 와중에 "띠용?" 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그만큼 튀는 장면이었는데, 다르게 말하면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진짜 매직 캐슬이 나타날 때쯤 든 생각은, 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영화가 너무 잔인했겠구나. 그래도 어른된 심정으로 이렇게라도 해줘야겠단 생각을 한건 아니었을까. 인상 깊었던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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