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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3. 11. 19. 15:03
코엔 형제, 2013 1.
이번 주의 영화는 《인사이드 르윈》. 지지난주쯤에 왓챠를 들어갔다가 11월 이벤트로 100원에 팔고 있길래 냉큼 구매해 버렸다. 감독도 믿고 보는 코엔 형제, 이미 내 리스트에 들어있던 영화이기도 했고 굳이 거를 이유가 없었지.
2.
채도를 죽인 포스터의 느낌 덕분에 아주 우울하고 슬픈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르 표시 "코미디"를 보고 동공 지진. 물론 우울하고 슬픈 영화는 맞았다. 다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마냥 눈물이 줄줄 흐르는 슬픔은 아니고, 코엔 특유의 유머인 듯 아닌 듯 미묘한 블랙 코미디였다.
3.
코미디 영화임과 동시에 음악 영화이기도 하다. 60년대 미국 가상의 포크가수 르윈 데이비스를 주인공으로, 그 시절의 포크 음악들에 대한 향취가 드러나는 영화였다. 다만 그것을 마냥 낭만적으로 그리지는 않을 뿐.
4.
주인공은 제대로 한 푼 버는 것도 힘들어 매번 몸 뉘일 곳을 찾아 여러 사람에게 빌붙어 다니는 인물이다. 영화가 조성해놓은 상황 자체가 아주 괴롭고 피로감으로 가득 차있다. 그 끝에 어떤 깨달음이나 커다란 성공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신기하게도 조금의 개운함이 남는 그런 영화였다.
5.
영화를 다 본 후, 이 르윈 데이비스라는 인물이 누구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바로 자신 아닐까. 본인이 말하기로는 이것이 아주 직업적인 것이며,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자신은 연예계라는 산업에 몸담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나 자신에 대한 치유가 아니었나 싶었다.
6.
코엔 형제의 영화들은 늘 만족스러웠지만, 이번 영화는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았다. 내가 좀 이런 뉘앙스를 좋아해..
7.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좀 더 해보기로 하고, 다른 이야기. 좀 불만이 쌓인 이야기. 나도 나름 왓챠에 한줄평을 적다 보니, 들어간 김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썼나 하고 염탐을 한다. 대부분 추천을 많이 받은 리뷰는 좋은 글이긴 한데 가끔씩 정말 좋은, 혹은 좋은 것으로 알려진 영화에 유독 공격적인 한줄평이 많은 추천을 받아 올라와 있는 것이 보일 때가 있다. 《애드 아스트라》도 그랬던 것 같고 《바람이 분다》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도 묶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이번 영화도 그렇더라. 개인적으론 미야자키 하야오 최근 2편에 대한 혹평들은 진짜 좀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 아무튼,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이터널 선샤인》 글 썼을 때가 생각나는군)가 꽤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국내에 개봉되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나 싶다. 원론적으로는 어떤 작품을 보면 그 감상이 보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한다. 없는 것을 있다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잖아. 뭔가 좋다고 알려진 영화,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를 보고 "나는 별로 감흥 없는데"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좋다고 하는 쪽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더라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좋다고 하는 쪽이 싫다고 하는 쪽을 공격하는 경우보다 싫다고 하는 쪽이 좋다고 하는 쪽을 공격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좋다고 하는 쪽은 남 공격할 시간이 어딨어 영화 좋은 거에 감탄하기 바쁜데. 그런데 꼭 "재미없다는 말도 못 하게 한다"던가 "못 배운 놈 취급한다"던가 "평론가들 눈치 본다"던가 자극적인 말로 사람 속을 긁어야겠나. 안좋고 모르겠으면 그냥 그런거지 그걸 꼭 나쁜걸로 만들어. 혹자는 이런 경향을 최근 사회를 좀먹고 있는 반지성주의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10년 전 영화에도 그랬고 개봉한 지 한 달도 안 지난 최신영화에도 그러고 있다. 뭐 진짜 최근의 반지성주의 때문인지, 그냥 원래 사회과학의 규칙이 이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자중의 목소리는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
8.
아무튼 좀 꽂혀서 막 쏟아냈는데, 아주 좋은 영화였다. 《인사이드 르윈》. 작 중 나오는 르윈 데이비스의 앨범과 같다. 이름도 참 잘 어울리게 잘 지었어. 원제는 《Inside Llewyn Davis》.
인상 깊었던 장면 1 아니 애덤 드라이버 여기서 뭐함 ㅋㅋ?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노래는 좋았다. 그래서 끝나고 음원을 다시 들었는데 영화에서 느꼈던 그 느낌은 안 나긴 하더라. 아무튼 주인공에 집중해서 더 이야기해 보자면, 녹음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 장면에서도 주인공은 완전한 보상을 얻어내지 못한다. 주인공은 개런티 없이 이 노래의 녹음비를 받는데, 나중에 뒷부분에서 이 노래에 대해 "저작권료가 짭짤할 거야"라고 (상황을 모를) 주변 인물이 평하는 장면을 보고 그럼 그렇지 싶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2 그 고생길을 해서 겨우 도착해 감동적인 공연을 해냈으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피드백 뿐. 사실 여기서 갑자기 저쪽 소속사 사장이 좋다고 손 덥석 잡는 그림이 나올 그런 영화는 아니긴 했지. 그나저나 여기서 공연장이 된 장소의 이름이 "뿔의 문", 초반부에 잠깐 얼굴도 비췄던 소속사 가수 이름은 "트로이", 나중에 드러나는 고양이의 이름은 "율리시스". 이게 다 《오디세이아》에서 레퍼런스를 따온 거라고 하더라. 십여 년 전쯤에... 아직 문학소년의 흔적이 남아있던 시절에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오디세이아》.. 아무튼 그걸 기반으로 이 영화를 분석하는 글을 읽었는데 아주 좋은 해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3 영화의 결말. 영화의 시작 부분이 반복되는가 싶다가 노래 하나가 더 시작된다. 르윈 데이비스의 고난을 한껏 체험시킨 다음 들려주는 숨겨진 노래. 중반부에 한 번 시도했다가 그 상황의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포기했던 그 노래. 인상 깊었던 장면들도 모두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고, 좋은 포크송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지만 마지막에 나온 이 노래의 울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노래를 듣고 있는 관객들의 얼굴 대신 르윈 데이비스의 모습만을 최대한 비추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노래 뿐만이 아니라 오프닝과 대구를 이루는 이 장면 시퀀스 전체가 너무 좋았다. 시작의 그 불편했던 장면, 정체 모를 남자에게 얻어맞는 그 상황조차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결말. 그냥 순수하게 재밌는 부분도 있었고, 전날 그 깽판에도 쿨한 사장이라던가, 다음 무대로 올라온 인물이 그 유명한 "밥 딜런"이라는 백스토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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