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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을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3. 11. 12. 13:53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19 1.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넓게 분류했을 때 나도 기독교 신자에 속한다. 그중 가톨릭(천주교라는 표현이 좀 더 익숙하다.), 심지어 세례명까지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고, 그 영향 아래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기 때문. 아버지와 삼촌들도 내가 듣기론 어릴 적에 성당에서 지내셨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천주교 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 성모상이나 묵주 같은 오브제들은 비치되어 있으나 그 영향이 일상생활 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부모님도 딱히 종교에 적극적이셨던 것은 아니었고... 냉담자라는 용어가 있던데, 내가 바로 그 냉담자라고 할 수 있겠다.
2.
사실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종교가 없다 수준이 아니라 신 자체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쪽. 하지만 이것 역시 주변에 당당하게 밝히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종교 그 자체를 아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튼 정리하자면, 종교에 있어서 나는 주관은 있으나 태도는 소극적인 사람이다.
3.
영화 이야기 하기 전에 자꾸 딴 소리를 하게 되는데, 《두 교황》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주중에 볼 영화를 고르면서 이번 주 기분은 《두 교황》이다! 하고 골라버렸는데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바로 어제 알았다. 그리고 나는 넷플릭스 계정이 없다. 뭔가 넷플릭스 영화는 아닐 거란 이미지가 있었어. 아무튼, 다행히 거실 TV에 연결된 넷플릭스 계정이 있어서 볼 수는 있었다. 대신 인상 깊었던 장면 캡처를 어떻게 할지는 고민 중. 그래도 이번 기회에 넷플릭스 구독을 하긴 해야겠단 마음은 먹었다.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계속 넷플릭스 계정은 빌려 쓰고, 굳이 빌리기 싫으니까 넷플릭스 독점 작은 자꾸 미루고... 아니 근데 솔직히 영화 한 편만 좀 따로 팔면 어디 덧나나? 한 달 동안 넷플릭스에선 영화 한 편 안 볼 가능성도 있는데 1인 요금제 9천 원가량 결제된다고 하면 좀 생돈 날리는 기분이잖아.
4.
아무튼 《두 교황》이 넷플릭스 영화가 아닐거란 느낌은 포스터와 제목에서 오는 왠지 모를 정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고, 생각보다 빠르고 세련된 편집에 놀랐다. 아 이거 넷플릭스 영화 맞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봤던 《로마》라던가 《아이리시맨》 모두 특별히 넷플릭스스럽다 하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용케도 그렇게 생각했네.
5.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작년 마지막 날까지 생존해 있었던 베네딕토 16세와 현 교황 프란치스코이다. 실제로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에서는 이 둘을 각각 보수와 진보의 대표로 각색해 둘의 대립구도를 그려내고 있다. 잔뼈 굵은 두 주연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였고, 실존 인물과 닮도록 분장도 잘 되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6.
예상치 못한 세련된 편집과 더불어 영화 전체적으로 교황이라는 자리가 갖는 무게감과 요제프 라칭거와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라는 인물의 인간미가 공존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인간미에는 소박함도 있지만, 불완전함도 포함된다.
7.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종교라는 것이 완벽한 존재, 신을 좇기 위해 이 불완전함을 쌓아올려 지은 탑이 아닌가 싶더라. 영화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 게 아닐까.
8.
아무튼 앞서 길게 주저리 이야기했듯 스스로 신자라고도 못 칭할 사람이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모를 경외감이 들긴 하더라. 그리고 특히 그 배경이 카톨릭이면 최소한의 정은 있는지 조금 더 편한 느낌이 있어.
인상 깊었던 장면 두 주인공의 첫 대담인데, 생각보다 내용이 살벌해서 놀랐다. 장면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도 좋았고. 아무튼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는 클립에서 대충 따왔는데, 역시 화질이 마음에 안 드는군. 다른 장면들도 넣고 싶은데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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