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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를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4. 9. 29. 20:58
로만 폴만스키, 2002
1.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해오는 것치곤 은근히 못 본 명작들이 많다. 나 심지어 <포레스트 검프>도 안 봤어. 로만 폴만스키의 대표작 <피아니스트>도 나에겐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아주 유명한데,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는 영화.
2.
이런 영화들의 단점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대충 시놉시스를 다 아는 상태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 그래도 이게 반전 영화 같은 건 아니니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대신 얼마 전에 홀로코스트 주제의 또 다른 명작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기 때문에 아주 내키면서 고른 영화는 아니긴 했다. 오늘 안 보면 왓챠에서 내려가기 때문에 선택했을 뿐.
3.
로만 폴만스키, 아주 유명한 감독이다. <피아니스트>는 2002년작으로서 21세기 영화지만, 사실은 주된 활동 시대가 그보다는 조금 이른 감독. 잭 니콜슨 주연의 또 다른 대표작 <차이나타운>이 1974년 작품인것만 봐도. 그리고 사실 지금 세대에선 작품 보단 개인사로 더 유명할 것이다. 뭐라 함부로 말 얹기가 어려운 행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고, 그 덕분에 작품성과는 관계없이 영화들도 덩달아 공격받고 있는 지경. 굳이 언급하긴 했지만 영화는 영화로 봐야겠지 그래.
4.
꼭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다고 그 작품이 명작이 되는건 아니다. 물론 비극적인 사건을 잘 다루면 조금은 치우치는 평가가 나올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주제를 다루는 것만으로 이미 어떠한 도전을 한 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 의미에서 <피아니스트>의 초반부가 생각보다 평이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 기억난다. 약간 갸웃. 뭐랄까 오래된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들었고.
5.그리고 영화는 그런 분위기를 철저히 망가뜨린다. 주인공 슈필만의 말끔한 이 모습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아래 인상 깊었던 장면들에서 확인해 보시라.
6.
영화 마지막 까지 주인공은 살아남는다. 주인공은 염치 불구하고 살아남는다. 가족 모두가 유대인을 처형하는 수용소로 끌려가는 와중 주인공은,나치의 앞잡이였던 지인에게 혼자만 붙들려 살아나 버린다. 주인공은 반란을 계획하는 유대인들에게 협력하긴 하지만, 끝내 그들에게 합류하진 않고 은신처를 구해줄 게토 밖의 지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되려 할 뿐이었다.
7.
그렇다고 주인공을 대의를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할 순 없다.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지. 직접 주인공에 대해 염치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썼으나, 주인공이 결코 추해진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삶에 대한 욕구가 바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묶어낸 끈이 주인공의 피아니스트라는 정체성이 아니었을까. 조금 뜬구름 잡는 감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었다.
8.
여러모로 보는 내내 괴로웠던 영화기도 했다. 시작 장면의 폭격도 그렇고, 나치놈들 조금만 기분 상하면 바로 총 꺼내서 쏴버리니까 깜짝깜짝 놀라면서 봤어.. 영화가 전체적으로 그런 잔인한 묘사들을 직설적으로 다뤘고, 그만큼 그 시대의 광기와 괴로움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영화였다.
9.
밤 늦게 이 글을 다시 읽고 한 번 다듬었다. 요즘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할 때 시야가 절반만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집중력이 엉망이더라. 글 여기저기가 누더기 같았어.
인상 깊었던 장면 1 이 영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잭 니콜슨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누르고 최연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이드리언 브로디. <디태치먼트>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는데 정말 우울한 인상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그렇다고 그런 이미지에만 묶여있지도 않은 느낌이고 말이다. 최근 주연작 중에 괜찮은 영화가 잘 안 보이는 게 아쉽지만...
인상 깊었던 장면 2 후반부의 유명한 피아노 연주 장면. 후반부의 이 장면과 독일군이 물러난 직후의 장면은 영화를 보기 전에도 클립으로 몇 번 봐서 잘 알고 있었다. 주인공이 지금까지 겪어온 고난이 담긴 아주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이 연주를 듣는 독일군 장교도 인상깊었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마치 주인공의 피아노 연주가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가 주인공을 살려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그 인물의 배경이나, 아니면 장면의 분위기만 봐도 주인공이 연주를 못했거나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주인공을 살려줬을 인물로 보인다. 이 장면에서의 요점은 연주 그 자체였던 것 같고. 그냥 아름다웠어 연주가. 이 연주가 바로 비이성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주인공이 놓지 못했던 그 끈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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