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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피크>를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4. 9. 22. 11:06
기예르모 델 토로, 2015 1.
이젠 격주로 쓴다고 자책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 지난주엔 추석 연휴였으니까... 그래도 다음 주는 꼭 볼 거다. 다음 주에 고른 영화 안 보면 왓챠에서 내려가거든. 사실 이번주 일요일도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니라서 미룰까 생각하긴 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2주 연속 쉬는건 아니다 싶어서 억지로 새벽에 알람까지 맞춰놓고 영화를 봤다.
2.
그리고 사실 그냥 단평으로 넘기려고 했었다. 영화 보는 중간 살짝 갸웃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점프 스케어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트메어 앨리>와 이 작품을 착각하고 이번 주에 볼 영화로 넣어놨다가 그냥 바꾸기도 뭣해서 본거였거든. 기대감도 별로 크지 않았던 영화인 데다가, 중반까지 "흠..."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었고, 일찍 일어난다고 피곤하기까지 한데 이거 오늘 딱 단평 각이다 각. 하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이렇게 됐습니다 네.
3.
왜 단평으로 넘기지 않았느냐. 여전히 영화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근데 뭔가, 재밌었어..! 분명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데, 재밌어..! 아니 근데 이게 고딕 공포 영화인데, 왜 나는 마지막에 낄낄거리면서 웃고 있냐는거야. 애석하게도 이렇게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람에 글을 좀 펼쳐보게 되었다.
4.
기예르모 델 토로, 역시나 아주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다. 내 올 타임 베스트 중에 하나로 <판의 미로>를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특유의 색채와 감정선이 존재하는 감독이고, 이번 영화에서도 그 매력이 잘 살아났었다고 생각한다.
5.
영화의 의도를 한 번 감히 짐작해보자면, 추악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다뤄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 모순이 주는 감정. 그런 의미에서 후반부에 드러나는 비밀의 맛이 확 살아날 수 있었지 않았나.
6.
정말 영국 신사란 말이 잘 어울리는 배우 톰 히들스턴의 매력도 잘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따지자면 나쁜 놈 역할이긴 한데 등장할 때마다 공기가 편안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기괴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세트나 분장 등의 미술도 좋았고.
7.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음에도 결국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좀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아닌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되돌아보면 마냥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다. 잘 모르겠다 정말. 영화는 알겠는데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오랜만이야.
8.
내가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이유 일지도. 마지막 장면이 마치 한 남자를 둔 두 여인의 결투처럼 되어버린게 이상했단 느낌은 있다. 뭔가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리려는 듯한 여주인공의 초반 묘사도 토마스의 등장과 함께 바로 무너져 내리는 게 이상했고. 아니면, 여주인공이 쓴다는 그 소설에 대한 작중 비판을 그대로 가져와 비꼬는 게 아니었을까. 고도의 메타적 유머인거지.
9.
아무튼 유독 감독 작품 중에서 인지도가 부족한 편인데다, 나 스스로도 기대를 하지 않고 봤던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보니까 이거 델 토로 감독 작품 맞네 싶은 생각이 드는 역시 이 압도적인 독특함. 와중에 셀프 오마주도 보이고 말이야. 좀 징그럽긴 했지만 그 셀프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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