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냥 가깝진 않더라도 집 근처에 영화관이 두 곳이나, 그것도 한 곳은 예술영화관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번 주를 시작할 때 봐야겠단 마음을 먹은 영화를 당일 아침 예매한 다음 밀린 집안일을 대충 처리하고 게임도 몇 판 한 다음 슬슬 영화관을 향한 다음 편하게 감상하고 여유롭게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깐. 생각해 보면 지금껏 영화관에 대해 너무 사람 가리는 길고양이처럼 털을 세우고 경계해 왔던 것 같은데, 이렇게 진입장벽이 낮아지니깐 슬슬 친숙한 느낌도 드는 듯하다. 한 가지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도 그 둘 중 가까운 영화관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것이지만.
2. 아무튼 제작년인가 작년, 영화관을 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결국 가지 않았던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이번엔 개봉 소식 듣자마자 바로 영화관으로 가길 마음먹었다. 그리고 사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영화관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3.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 영화 왜 이렇게 점점 어려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아니면 사실 원래부터가 어려운 이야기 하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독특한 특유의 영상미만큼이나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뽐내는 감독인데, 이번엔 뭔가 초현실적이란 느낌마저 들었다.
4. 어렵다는 것과 별개로 상당히 즐겁게 보긴 했는데, 역시 웨스 앤더슨 식 블랙 코미디. 그 뻔뻔함이 너무 좋아. 어떻게보면 늘 같은 패턴 같은데 항상 웃게 된다.
5. 다만 이번 영화는 지금껏 봐왔던, 마치 3부작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애스터로이드 시티>와는 다른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일단 액자식 구성이 없었단 점도 있겠지만, 오프닝 시퀀스의 강렬한 긴장감 조성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전에도 가끔씩 잔인한 연출을 보여주긴 했지만 영화 시작부터 사람이 반토막 나는 걸 보여줄 줄이야. 근데 이 오프닝 시퀀스 상당히 마음에 들긴 했다. 특히 강렬한 음악과 함께 옥수수밭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아주 인상 깊었다. 그 끝에 튀어나오는 개그도 좋았고.
6. 그리고 오프닝에서 던져졌던 이 긴장감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정확히는 영화 내내 밀당을 한다. 그 충격 전에 들렸었던 소리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인물 배치에서 다시 반복한다거나, 대놓고 기내에서 우스꽝스럽게 생긴 폭탄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때마다 주인공은 자신은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근데 이게 정말 말처럼 불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치 극한의 회피형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약간 내면의 실소를 유발하는 부분이었다. 좋은 의미에서.
7. 사업가, 특히 탐욕적인 사업가는 이야기로 써먹기 정말 좋은 소재 같단 생각이 든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말할 것도 없고, 사업가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브루탈리스트>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지. 앞 문장에서 언급한 두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인간성을 잃게 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듯했는데, <페니키안 스킴>의 경우 그들 조차도 결국 한낱 인간에 불과하단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8. 그에 더해 직접적인 기독교적 모티프까지 담겨있는 덕분에 이 영화는 인간의 감정 그 근본까지 탐험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두 형제가 싸우는 이유, 주인공의 가사 상태마다 등장하는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 등. 지난번도 그렇고 참 보고 나면 생각 많아지게 만든단 말이야.
9. 아무튼 화면은 진짜 명불허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좀 더 특히 느낀 건데, 화면도 화면인데 영화적 공간과 상황이 미술적으로 엄청 이쁘단 생각도 함께 들더라. 가끔씩 보면 어떻게 저렇게 개런티 비쌀법한 배우들이 이 한 영화에 잔뜩 나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근데 내가 배우라면 웨스 앤더슨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엄청난 영광처럼 느껴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 최애 감독으로 꼽는 인물은 아니지만, 배우 입장에서 웨스 앤더슨의 색깔이 칠해지는 순간 관객에게 전해질 그 강렬한 이미지를 놓칠 수 없을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