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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커: 폴리 아 되>를 보고 왔다.
    문화시민 2024. 10. 3. 17:11

    2024년 10월 3일

     

    0.

    현재 상영 중인 영화다 보니 스포일러 주의.

     

    1.

    어제 문득 지난주 봤던 면접의 결과가 통보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합격이면 맛있는 저녁, 불합격이면 <조커 2> 예매"를 주변에다 구호로 내뱉고 다녔다. 결국 면접 결과는... 아직 미통보! 그래서 맛있는 저녁도 먹었고, <조커: 폴리 아 되>도 오늘 아침에 보고 왔다. 면접은 어차피 던져진 동전, 그냥 잊자구.

     

    2.

    전작 <조커>는 당시 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였다. 워낙 그 이미지가 강력한 캐릭터를 다루는 시도였다 보니 개봉 전부터 적잖은 관심이 들끓었었고,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과 충격적인 전개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 인기는 당시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에서 분장 벌칙으로 쓰였을 정도. 그때를 기준으로 약 10년 전 <무한도전>에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 분장 벌칙이 등장했던 것이 오버랩된다.

     

    3.

    그리고 그런 <조커>의 배경에 힘입어 후속작 <조커: 폴리 아 되> 역시 개봉 전부터 적잖은 관심을 자아냈다. 올해의 기대작 리스트에선 빠지질 않고 한 자리를 차지했었던 것 같고, 개봉 한 주 전쯤엔 이동진 평론가가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를 분석해 가며 이 영화의 별점을 가늠해 보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수준이었다. "폴리 아 되Folie à Deux"라는 부제도 뭔가 엄청 그럴듯하잖아. 그렇게 어느덧 개봉일은 찾아왔고, 오늘로 그 3일 차. 영화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4.

    사실 나는 당시 <조커>를 괜찮게 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2편 까진 굳이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기대가 너무 컸었던 탓이었나, 생각보단 감흥이 엄청 오진 않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편이 평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갑자기 막 보고 싶어 지더라고. 평이 좋지 않다고 표현해 왔는데,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평이 사람마다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심지어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꽤 갈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아주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다. 나는 이 영화가 그렇게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 결과, 사람들의 반응이 0점과 5점으로 갈리게 된 모습을 보며 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진짜 0점과 5점으로 나뉜건 아니고 1점과 3.5점 정도로 나뉘고 있는 느낌이긴 한데.

     

    5.

    <조커: 폴리 아 되>는 <조커>를 부정하는 듯하다. 아니면, <조커>를 오독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듯하다. 영화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조커로서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고, 결말에선 그를 허무하게 죽여버린다. 허무하고 비극적인 결말이었고, 카타르시스가 존재하지 않는 영화였다. 세상 쌀쌀맞은 영화였는데, 솔직히 흥행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나쁜 영화는 아니었다. 장면을 만드는 감독의 감각엔 여전히 날이 서있었다.

     

    6.

    전작의 상징적이었던 노래를 다시 가져와 잘 활용했을 뿐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를 뮤지컬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를 보기 전엔 이 뮤지컬에 대한 불호 의견이 강하길래, 설마 개인적으로 좀 불호를 느꼈었던 <아네트>의 뮤지컬과 같은 형식을 취하는 건가 예측하기도 했었다. 근데 뮤지컬 장면들 너무 좋던데? 사실 <아네트>도 그 의도엔 공감하기도 했었고, <조커: 폴리 아 되>의 뮤지컬 또한 이 영화의 진득하고 흘러넘치는 자기 연민을 드러내는 데에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7.

    혹시 주연 배우 호아킨 피닉스만큼이나 조커라는 인물에 몰입한 인물이 각본까지 직접 쓴 감독 토드 필립스가 아닐까. 앞 문단에서 말했듯 영화에서 왠지 모를 자기 연민이 느껴진다. 다른 말로, 감독이 전작 성공에 힘입어 빵빵한 지원을 등에 업고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 한 번 제대로 쏟아내 버린 느낌. 이 자기 연민은 무엇인가. 마치 말기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이젠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는 듯한 감정이었다.

     

    8.

    주인공은 비루한 자아 "아서 플렉"과 모두가 열광하는 "조커"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하나를 선택할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두 정체성은 한쪽이 자라난 순간부터 이미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한 쪽이 분리된 순간 파멸을 맞이할 운명일 뿐. 우울함을 종종 감정에 생긴 염증, 감기로 표현하곤 한다. 이 영화에서의 우울은 치유할 수 없는 악성 종양, 암이었다.

     

    9.

    후속작으로서 전작 <조커>의 정반대 편에 있는듯한 영화였지만 전작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뒤틀려버린 아서 플렉은 결국 조커가 되어 자신이 선망하던 코미디언 머레이의 머리를 쏴버린다.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음과 동시에, 그 장면엔 아무런 환희 같은 게 없었다. 주인공이 각성하여 결국 일을 저지르는 장면이었는데도. 나는 당시 <조커>를 보고선 이 영화 자체가 마치 "펀치라인이 누락된 조크"를 그리는 듯하단 감상을 받았다. 이번 영화 역시 비슷했다, 아서 플렉은 결국 조커로서의 자신을 거부한다. 그 순간은 시대가 요구하는 광기를 거부하고 자아를 지켜내며 마침내 각성하는 듯한 장면이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는 이미 그 대사를 뱉을 때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뒤틀렸던 정신은 회복되지 못했으며, 그렇게 뒤틀린 상태 그대로 다시 정신병원에 들어가 이름도 모를 다른 수감자에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면서 영화가 끝난다.

     

    10.

    이 시리즈 자체가 우울증 환자 양산하기 딱 좋은 작품 같았어 그래서.

     

    11.

    아무튼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살짝 갸웃하기까지 했던 전작까지 덩달아 다시금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여러모로 괜찮은 후속작이었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3편은 안 나오겠지. 안 나왔으면 좋겠다.

     

    12.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자꾸 "폴리 아 되"를 "폴리 아 돼"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토드 필립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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