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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파트 2>를 보고 왔다.문화시민 2024. 3. 1. 16:20
2024년 3월 1일 0.
현재 상영 중인 영화다 보니 스포일러 주의.
1.
그 <반지의 제왕>에 버금가는 평을 받는 것으로 유명한 SF 대하소설 <듄>. 명성에 걸맞게 거대한 규모의 할리우드 프로젝트들이 몇 번이고 있어 왔으나 그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고 알고 있다. 드니 빌뇌브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2.
2021년에 이 영화의 1편을 영화관에서 본 기억이 난다. 당시 서울에 자취 중이었고, 어떤 큰 일이 끝난 다음 나에게 내리는 보상으로 선택한 영화가 <듄>이었다. 아마 IMAX관 까지 가서 봤던 걸로 기억한다. 1편을 보고 난 당시의 감상은, "쓰으으읍.... 생각보단... 흠..."
3.
사실 나는 <듄> 1편이 개봉하기 전부터, 심지어 예고편은 커녕 제작 소식만 들려왔을 때부터 이 영화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원작 소설은 비록 읽어보진 않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그 명성 때문에 뭔가 대단한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심지어 감독이 드니 빌뇌브야. 내가 또 <블레이드 러너 2049>도 엄청 좋아하면서 봤었거든. 굳이 언급할 필요 없는 다른 명작도 많은 감독이고.
4.
당시 왜 <듄> 1편을 좋아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영화의 구조라던가 만듦새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사의 클라이맥스가 너무 2편에 편중되어 있는 바람에 1편에선 이야기에 공백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듄: 파트 2>를 보고 온 상황에 다시 정리하자면, 1편에 대한 평가는 2편까지 다 보고 난 다음에 했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제 와서 줬던 별점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런 영화를 그렇게 단독으로 냈으면 평을 달게 받아야지! 가뜩이나 코로나 영향인지 2편까지의 텀도 길었던 것 같아서 상황 자체엔 불만이 좀 많았다.
5.
아무튼 이렇게 1편과 2편이 강하게 연결되어있고, 이번 글에서 언급하는 내용들은 아마 1편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평일 수 있을 것 같다. 두 영화를 묶어 한 단어로 평하자면, "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찍어 누르는 영화. 경관으로, 세계관으로, 인물로, 정치로, 서사로, 전투로 관객을 찍어 누르는 영화였다.
6.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생각나는 장점인데, 드니 빌뇌브도 나처럼 영화관 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조차 "이 사람의 영화라면 영화관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감독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게 단순히 내 취향을 저격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제공하는 영화적인 체험의 종류가 영화관에 딱 맞다는 느낌. 아 <듄: 파트 2>도 IMAX관에서 볼걸...!
7.
7번까지 왔는데 아직도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안 했군. SF 영화라는 게 자칫 잘못하면 관객이 쉬이 몰입에서 튕겨져 나가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신기할 정도로 그럴 낌새가 적었던 것 같다. 굳이 하나 꼽으라면 영어와 프레멘들의 언어를 섞어 말하는 순간? 어떻게 찾으려면 금방 찾아지는 걸 보니 이런 평을 하는 게 좀 뻘쭘하긴 한데, 세계관의 재현이 잘 되었다는 의미.
8.
사막과 프레멘들의 생활에 대한 묘사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하코넨 가문에 대한 묘사가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 이렇게 순수 악에 가까운 집단은 동시에 어떤 절대자적인 위치도 함께 가지곤 하는데, 그들의 기형적이고 불완전한 면을 조명하며 그들이 제어 가능한 집단인지 가늠당하는 모습까지 묘사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 덕분에 주인공에게 처단되어야 하는 순수 악, 그런 일차원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페이드 로타 하코넨 같은 인물이 더 흥미롭게 묘사될 수 있었지 않았나.
9.
결말에 대해. 농담조로 "<듄: 파트 3>를 기대해 주세요~"라고도 평할 수 있겠지만, 이 시리즈는 서사를 끝맺었으며, 그 결말은 비극이다. 구원자로 타락할 수밖에 없었던 자. 이 모순적인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10.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영상화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여기저기 광고도 한 걸로 알고 있다. 1편에도 나오긴 했지만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싶었는데 2편에선 정말 잔뜩 나온다. 심지어 유체까지 나온다. 만족스럽군.
11.
영화 이야기는 아니고, 요즘 상황에 대해서 조금. 앞서 <듄> 1편은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보게 되었었다고 말했었다. 이번 <듄: 파트 2>는 그와 반대였다.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보게 됐냐면, "3일 뒤에 영화 예매 해놓을 테니, 그전까지 할 일 좀 제발 다 해놔라". 솔직히 벌에 가깝지 이건. 하지만 그 제약마저도 제대로 통하질 않아서 할 일의 50% 정도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요즘 들어 일을 계속 미루고 자리에 앉아도 집중이 안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지난주 일요일에 보려 했던 영화도 안 봤고.. 그건 <파묘> 영향도 좀 있었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반강제로 영화 한 편 보고 조금 걸었는데, 나 스스로 되돌아봤을 때 리프레시라도 되었단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 날은 맑아서 좋더라. 영화관까지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인데 그거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의욕이 다시 돌아올진 모르겠지만.
12.
뭔가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라면 더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영화관 다녀오는 건 체력 소모가 심해.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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