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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노라>를 보고 든 생각
    일요감상회 2025. 6. 8. 16:22

    션 베이커, 2024

     

    1.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본 이후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던 감독 션 베이커. 다만 호기심 정도였지 특별히 작품을 챙겨봐야겠단 생각 까진 이어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나 갑자기 황금종려상에 오스카 작품상까지 받아 돌아왔다. 아니 그 <기생충>이 아직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두 상을 같이 받은 작품이 또다시 나올 줄이야. 내적인 감탄에 더불어, 또 개인적으로 추천을 받기도 해서 이번 주의 영화로 선택해 보았다.

     

    2.

    다만 추천에 더불어 영화에 대한 경고도 함께 받았으니, 몹시 외설적인 영화라는 것. 주인공의 직업 부터가 클럽의 스트리퍼이고, 그것을 감추지 않는 영화였다. 덕분에 영화 시작부터 아주 화려하더라고.

     

    3.

    근데 이 영화가 재밌었던 이유는, 초반부의 그 화려하고 야한 장면들이 지워질 만큼 영화 내내 다채롭게 변하고 몰아치는 줄거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스트립 클럽에서 시작해, 신데렐라 스토리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봉준호 영화가 생각나는 우스꽝스러운 블랙 코미디, 법정, 재벌, 그리고 아마 뒷부분에서 다시 언급할 것 같은데 강한 울림을 주는 엔딩까지. 알찬 영화였다.

     

    4.

    감독 션 베이커라는 인물에 대해서, 나는 그의 영화를 고작 2편 봤을 뿐이지만, 성 노동자에 대한 어떤 특정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성 노동자"라는 표현 자체가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은 뒤로 잠시 보내놓고, 션 베이커는 그 단어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임과 동시에, 왠지 모를 연민의 감정이 있는 듯하다고 해야 할지. 마냥 가여운 신세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5.

    다 보고 나면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지만, 그와 대비되는 화려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역시도 의도적으로 그러한 화면들로 찍어낸 영화였고, 이러한 대비가 영화의 감정을 더 강조한다는 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6.

    다만 이번 영화에서 조금 달랐던 점은, 아무래도 계속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엔딩 장면의 날씨 설정이겠지. 눈 내리는 흐린 날, 아무런 음악 없이 영화가 끝나는데, 그 쓸쓸함인지, 위안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관객에게 확 던져진다. 두 영화 사이에 있는 <레드 로켓>을 안 본 입장에서 너무 그 영화를 지워놓고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지금껏, 아니 영화 2편을 걸쳐 숨겨놓듯이 한 감정이었는데 갑자기 마침내 진심을 드러내듯 다가오는 거야.

     

    7.

    또또 너스레로 자기 능력 플렉스 하는 션 베이커. 감독, 각본에 더불어 편집까지 맡았다고 한다. 그러고 그 세 분야 모두 오스카를 챙긴 다음 제작자로서 작품상까지 가져갔다. 어쩜 이런 능력자가 있을 수 있을까. 아무튼 이 사람이 가진 시선에 대해서 영화 두 편에 걸쳐 계속 언급해 오곤 있지만 결국 중요한 사실은 감독으로서 만들어내는 영화가 재밌다는 거야. 이번 <아노라>도 그 페이소스가 담긴 코미디에 계속 낄낄거리면서 봤다.

     


    인상 깊었던 장면 1

    영화가 본격적으로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장면. 이 시끄러운 난장판이 너무 재밌었는데, 여기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인물 "이고르"가 영화 내내 너무 인상 깊었다. 겉모습만 보면 인터넷에서 짤로 봐왔던 동유럽 깡패 고프닉 그 자체였는데 그에 안 어울리는 공손함에 빵 터짐.

    인상 깊었던 장면 2

    근데 그런 웃음 포인트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 정말로 중요한 인물이긴 했다. 마치 <밀양>의 종찬 같이,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아노라의 옆에 한 발짝 떨어져 내내 신경 쓰는 모습이 눈에 밟히더라. 그리고 본인의 이름을 계속 거부하던 아노라, 그 이름의 의미를 찾기 위해 굳이 굳이 구글링까지 해서 언급해 주는 모습이라던가. 이 영화는 노동자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 노동자 아노라 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른 채 이 난장판에 던져진 하청의 하청 이고르, 그리고 아르메니아인 형제의 입장에서. 그런데 그와 동시에 영화에서는, 이에 대해 원망적인 혹은 개혁적인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사회에 속해 하나의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잃을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해 갈구하는 듯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아노라"라는 자기 이름의 의미를 굳이 찾아 전해준 이고르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이 마지막 장면의 울림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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