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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4. 6. 23. 14:03
루벤 외스틀룬드, 2022 1.
202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 <헤어질 결심>이 받았어야 했어... ㅂㄷㅂㄷ... 이 아니라, 아무튼 이번 주의 영화로 선택해 보았다.
2.
미학의 최전선에 있다는 평을 받는 시상식 칸 영화제. 그 수상작들을 도전하는 게 사실 조금 머뭇거려지는 부분도 있다. 물론 앞서 즐겁게 본 영화들 중에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도 있고, 그 유명한 <기생충>도 황금종려상 수상작에 포함되지만, 아무래도 역시 전체 리스트를, 특히 <티탄> 같은 영화들이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뭔가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긴 하지만. 영화 그까짓 거 그냥 보면 되는 거지 그래.
3.
굳이 이걸 길게 언급한 이유는, 다른 즐겁게 봤던 황금종려상 수상작들은 사실 그것이 황금종려상이여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그 영화를 선택해 왔던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이번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황금종려상이 이번 선택의 유일한 이유라는 뜻. 사실 외견을 따졌을 땐, 그렇게 구미가 당기는 영화는 아니었다. 포스터도 잘 모르겠고, 위 포스터 말고 다른 버전의 포스터는 더 끔찍하고, 평점이 막 아주 높은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유명 배우들이 잔뜩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은 이름을 발음하기조차 어렵고, 주제도 글쎄. 겉보기엔 그랬다.
4.
평점이 비교적 낮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 번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꽤 좋게 봤다. 재밌었다. 평점도 높게 줬다. 다만, 전체 평균 평점이 낮은 이유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점 때문인가 보다. 특히 그 영화에 미쳐있다는 칸 영화제에 참석한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 이 영화를 선택한 전 세계의 시네필들에게 신선함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일지를 생각해 본다면, 결과적으로 납득은 가는 점수대인 것 같다.
5.
그렇다면 나는 왜 이것을 더 좋게 봤는가. 저도 어디가서 영화로 꿀릴 놈은 아닙니다 허허. 라고 농담 삼아 장담을 하곤 하지만, 왜 이 영화를 더 좋게 보았을까. 다른 계급에 대한 우화를 다룬 영화를 많이 접하지 못해서 그랬나? 나는 엔딩이 강력하면 점수가 확 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6.
그리고 생각보다 신선한 면도 있었어. 마냥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말을 반복하기만 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가 말하는 계층의 문제가 넓었다는 점이 좋았다. 그 계층은 직업을 뜻하기도 하고, 성별을 뜻하기도 하고, 국적을 뜻하기도 한다. 후반부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 청소 노동자가 그 사회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된다는 아이디어가 그랬지 않나.
7.
크루즈에는 다양한 승무원들이 존재하는데, 그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인종에 따라 맡은 직무가 달라진다. 아마 그 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둘. 승객 대표 러시아 출신 자본가와 승무원 대표 미국 출신 사회주의자가 함께 진탕 취한채 서로는 죽이 맞아 좋아 죽으려 하는 사이 배를 난장판으로 방치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마치 사회 실험을 하듯 감독이 영화의 배경을 조성한 것이 느껴진다. 흔히들 "삼각형을 뒤집었다"고 표현하는 크루즈선 다음 파트, 섬에서의 묘사들도 그렇다.
8.
그 끝에서 뭔가 어떤 조소나 허무함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관객에게 넘기는 엔딩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내 답은. 글쎄 나도 몰라.
9.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감독의 전작 <더 스퀘어>의 예고편도 찾아 봤다. 두 영화가 어느 정도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것 같더라. 감독의 "곤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런 단어는 좀 지양해야 하는데... 뭔가 착 달라붙어.
인상 깊었던 장면 1 미국의 팁 문화가 이런 식으로 동작하는 거구나.. 아무튼, 코미디라는 이름 달고 전혀 웃기지 않은 영화들이 은근히 많은데, <슬픔의 삼각형>은 코미디 영화로서 꽤 즐거웠다. 특히 영화의 초중반부를 차지하는 이 크루즈 파트에선 꽤 자주 피식거렸다. 다 보고 나서 느낀건데, 영화에 직접적으로 그려지진 않지만, 저렇게 좋아하는데 해적을 만나서 다 죽어버렸다니 숙연...
인상 깊었던 장면 2 후반부의 사실상 주인공 애비게일. 상당히 인상 깊은 인물이었다. 배우 본인에게도 관심이 생긴다. 그리고 사실 이 컷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캐릭터 모두 인상 깊었다. 야야 역의 샬비 딘은 안타깝게도 이 영화가 유작이더라고.
인상 깊었던 장면 3 앞서 말했던 엔딩. 여기서 반쯤 열린 결말로 끝난다. 애비게일과 야야는 어떻게 되었을까. 반쯤 열린 결말. 마지막 대사 두 줄을 생각해보면, 그 끝이 좋지 않을 것이란 쪽에 더 기우는군.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상황과 대사였다. 이 컷과 이 직전 컷 둘 중 뭘 고를지 고민을 했는데, 블로그엔 좀 덜 보여주는게 더 나을 것 같네. 아무튼 기억에 남을 만한 강렬한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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