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후드>를 보고 든 생각일요감상회 2024. 2. 18. 21:37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1.
2010년대 중반 유튜브엔 영화 예고편을 직접 번역해 업로드하던 "한반지"라는 채널이 있었다. 그땐 유튜브가 아직 순수했던 시절이었지... 얼마 전에 검색하다가 별 쓰잘데기 없는 기능이랍시고 내미는 "시청자가 이 동영상도 시청함" 때문에 혐짤 테러에 당해서 유튜브에 대한 호감이 저 밑바닥을 향하고 있지만... 아무튼, 나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그 채널의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특히 <위플래쉬>, <버드맨> 등 2014년 개봉한 영화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이번 영화 <보이후드>는 그들 중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기는 건 또 별개의 문제라서 10년이 지난 이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2.
이 영화는 내가 올해 첫 번째 영화로 보려고 계획했던 영화였다. 영화를 직접 보진 않았어도 워낙 그 배경이 유명한 탓에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지 짐작이 되었었고,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지금 나에게 필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한 달 동안 영화를 볼 동력을 잃어버렸었다는 점이지. 이제라도 본 게 어디야. 올해 두 번째 영화면 원래 계획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네 그래.
3.
주연 배우, 엘라 콜트레인 영화의 "그 워낙 유명한 배경"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려 촬영 기간이 12년이나 되는 영화. 한 감독이 같은 배우들과 12년 동안 함께 촬영하며 그들이 성장하고 변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이야기에 녹아낸 영화. 이야 이건 벌써 명작이다.
4.
하지만 그만큼 영화를 보기 이전에 이야기가 너무 평탄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저 누군가의 삶을 보여주기만 할 뿐인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런데 재밌더라고.
5.
영화의 독특한 배경, 그리고 인생에 대한 평이한 이야기. 이 둘의 상호작용이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독보적인 설득력을 가능케 했다고 생각한다.
6.
12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등장인물들 간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이벤트들이 함께 엮여 2시간 40분가량의 영화에 압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였다.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가 출간되었을 때의 행사나 새로운 미국 대통령 선거, 이라크 전쟁 같은 사건들. 이런 영화는 나중에 나무위키 같은 사이트에서 읽어보면 또 새롭게 재밌더라고. 예를 들어 영화에 나온 야구선수가 촬영 당시엔 그냥 리그 탑급 투수를 샤라웃 하는 느낌으로 찍었던 거였는데, 개봉하고 나서 보니 약물 복용 혐의가 밝혀져 몰락해 버렸다던가.
7.
나는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니다. 몰랐는데 <스쿨 오브 락>이 이 감독 영화였더라고. 아무튼, 이번 <보이후드>도 그렇고, <비포 시리즈>도 그 촬영 배경이 범상치가 않더라. 세상에 참 볼 영화, 파헤쳐볼 감독이 너무 많아.
8.
여러모로 지금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필요한 영화라는 표현을 다시 쓰려다가.
인상 깊었던 장면 1 어휴 난 이 아저씨 나올 때부터 맘에 안 들었어. 그래도 애들이랑 골프도 치고 잘 놀아주는 착한 아빠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알코올 중독에 꼬장꼬장.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적인 연기 톤도 좋았고, 12년이라는 시간을 압축하면서 인물들이 장면마다 급격히 변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아역에서 시작한 배우들이 역변하는 모습도 그렇고. 그렇게 수염이 많이 날 줄은 몰랐어 주인공...
인상 깊었던 장면 2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연기. 이 인물이 영화 중심에 서있는 건 아니지만 <로마>에서 봤던 어머니들 캐릭터 같은 느낌도 든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었고, 또 이 장면 덕분에 엔딩에서 주인공이 나눈 대화가 더 설득력을 얻은 것 같다. 우리는 좋은 영화들을 보며 우리 삶이 영화 같기를 바라지만, <보이후드>는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구나.
'일요감상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든 생각 (1) 2024.03.17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든 생각 (0) 2024.03.11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보고 든 생각 (1) 2024.02.11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고 든 생각 (0) 2023.12.24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든 생각 (1) 202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