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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파더>를 보고 든 생각
    일요감상회 2026. 4. 19. 21:50
    플로리앙 젤레르, 2021

     
    1.
    사실 오늘 보려 한 영화는 <폭스캐처>였는데, 한국에서 제공하는 OTT가 없더라고. 이럴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기대했는데...라고는 말하지만 지난주엔 아무 말도 없이 영화를 안 보긴 했지. 근데 지난 일요일이 많이 피곤하긴 했어. 즐겁게 노느라.
     
    2.
    아무튼 그렇게 급히 찾은 대체 영화는 <더 파더>. 왓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드디어 왓챠를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에 이어 왓챠까지 OTT를 두개나 구독하다니 이 과소비를 어쩐담.
     
    3.
    <더 파더>는 치매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치매는 종종 "세상에서 제일 나쁜 병"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치매라는 병에 대해 도저히 어쩔 줄을 모르겠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약간의 개인사도 있고. 만약 부모님이 치매에 걸린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영화의 주제가 이렇다보니 내게 불편하게 다가오진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들긴 했다. 내가 좀 감정이 불편해지는 영화를 감상하길 즐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4.
    실은 치매 환자를 다룬 작품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말에 본 <봄날은 간다>도 주인공의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모습으로 나온다. 다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런 치매 환자를 돌보는 주변인물의 슬픔과 고됨에 대해 다룬다. 많은 감상자들이 <더 파더>에 대해 특별한 점으로 짚는 점은 이 영화가 주변인이 아닌 환자 본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5.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다면, 치매라는 질환이 주는 참담함에 더해 공포스러운 감정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누군가 잘못 꾼 꿈이 아니라 그의 선명한 의식이라면. 영화는 집요하게 그 공포심을 자극한다. 같은 인물을 다른 배우로 치환해 버리기도 하거나, 대화의 흐름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려 주인공이 느낄 혼란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6.
    감독 플로리앙 젤레르는 감독으로서는 그리 이름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는데, 사실 극작가로 더 오래 활동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 작품 자체가 그가 쓴 동명의 희극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약간 연극의 테이스트가 담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공간을 쓰는 모습이 그랬다. 마치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세트장을 다루듯, 영화가 제한해 둔 공간인 주인공의 집에 계속해서 스멀스멀 변주를 주는 것이다.
     
    7.
    마지막 장면에서는 거의 눈물이 나기 직전이었는데, 단순히 슬펐다는 표현 대신 참담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8.
    그 결과... 부모님이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두려움에 더해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두려움까지 더해주는 영화가 되었다. 삶이란 이토록 공포스럽구나.
     
    9.
    이번 단락은 완전 100% 사담.

    언덕뵈기, 2026

    요즘 또 새로운 취미를 들였거든. 이번 주 어느 요일, 웬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며 퇴근하던 길 문득 나는 "오늘 저녁은 파스타를 해 먹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오늘로 벌써 한 주 중 4일째 파스타를 해 먹고 있다. 근데 이게 할 때마다 새롭게 재밌더라고. 재료를 하나씩 바꿔보고, 더해보고, 조리법을 바꿔보고. 한 그릇 만들 때마다 맛이 점점 좋아지는 게 주변에다 대고 다짜고짜 자랑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이미 인스타 스토리에 3번이나 자랑을 해서 주변인들로부터 이 인간은 뭐지 싶은 시선을 느낄 것 같으니 아쉬운 대로 여기다가... 아무튼 오늘의 재료는 올리브유, 우삼겹, 마늘, 페퍼론치노, 치킨스톡. 물론 영화 이야기 이걸로 퉁치려는 건 아니고 아래에서 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자.


    인상 깊었던 장면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 마지막 장면을 최고의 대사, 최고의 연기, 최고의 장면으로 선택하지 않을까. 종종 작품이 주인공에게 가하는 폭력이 그래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할 때가 있다. <더 파더>는 이 장면을 통해 그 의미를 건져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라는 한 줄의 대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뇌리에 박히는데, 거기다가 이 시대 최고의 명배우 중 한 명인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참담한 유아퇴행의 모습이 이어진다. 치매 환자가 완전히 붕괴해 버리는 모습이 영화의 기승전결 가장 꼭대기의 갈등 상황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결말에 이르러 시작된다. 이때 주인공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 영화의 이야기는 꼭 치매라는 주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인의 절규는 인간의 삶에 내포된 근원적인 공포에 대한 것으로 느껴졌다. 다만 이 영화는 그렇게 잔인하게 끝맺어지지 않는다. 마치 그 순간 그가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 엄마가 되어주는 듯 간호사는 주인공을 안은 채 토닥인다. 도저히 어찌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힘도 가지지 않는 가짜 어머니의 위로와 함께 카메라는 병실의 창 밖으로 패닝 되며 공원의 울창한 나무를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밀양의 엔딩이 떠오르기도 해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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