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감상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고 든 생각

언덕뵈기 2025. 1. 19. 16:39

조지 밀러, 2024

 
1.
소위 말하는 "블밍아웃" 이후 쓰는 첫 글이다. 어차피 찾아오는 사람 이라곤 소수의 독자와 다수의 매크로 밖에 없던, 장사가 되긴 하는 건지 지나갈 때마다 궁금했던 시골 국도변의 허름한 식당 같던 블로그 아무렇게나 필터링 없이 말을 막 뱉어왔었는데 지금은 갑자기 잠재적 방문객들을 떠올리며 타이핑의 속도가 아주 느려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근데 사실, 나도 그렇고, 이런 종류의 공개가 있을 땐 보통 그 순간 한 번의 흥미 이후 더 이상 발길을 들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냥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건강한 블로그 생활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민망하니까 자꾸 쓸데없는 내용으로 첫 문단부터 말이 길어지는데 아무튼 오늘의 영화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작년 극장에서 볼까 말까 계속 간을 봤던 영화고 결국 이렇게 해를 넘겨 OTT로 감상하게 되었다.
 
2.
워낙 유명한 <매드 맥스> 시리즈인지라 전작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79년 1편 <매드 맥스>를 시작으로 20세기에 개봉된 세 편의 영화는 수많은 작품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하고(나무위키 피셜), 그 이후 30년 만에 등장한 속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또한 개봉과 동시에 수많은 마니아들을 끌어 모았다. 나 또한 당시 그 영화의 아드레날린에 정말 중독되다시피 했었고, 팬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곧바로 계획된 시리즈의 새로운 속편들을 애타게 기다려 왔었다. 처음 한 3년 정도는.
 
3.
헐리우드라는 곳이 워낙 큰돈이 오고 가는 곳이라 그랬던 걸까. 감독 조지 밀러가 워너 브라더스를 고소했다던가 하는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는 등 금방 나올 줄 알았던 새 <매드 맥스>의 제작은 갑자기 지지부진해졌고 어느 순간 대부분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되었다. 그래도 9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2024년 드디어 <매드 맥스>가 돌아왔다. 3편 이후 4편 나오는 데 까지 30년 걸렸다는데 9년이면 양반이긴 하지. 그리고 사실 계속 "매드 맥스"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이 시리즈의 주인공 맥스는 이번 영화에서 이름 한 번 호명되지 않는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전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 "퓨리오사"를 주인공으로 한 프리퀄 영화이다.
 
4.
<분노의 도로>에서도 물론 주인공 수준의 무게감과 분량을 보여줬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호평 까지 받았던 퓨리오사이긴 하지만, 굳이 시리즈 이름에 떡하니 박혀있는 맥스를 각본상에서 지워버린 다음 이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좀 속물적으로 표현하자면 "돈이 될 것 같으니까" 겠지만, 소위 방랑자 같은 면모가 있던 맥스보다는 퓨리오사를 주인공으로 했을 때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중심에서부터 재구축하기에 더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을 것이다.
 
5.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이런 구조를 취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 [주인공 이름 + 시리즈 이름 + 사가Saga]. 그리고 이 제목처럼 세계관을 탄탄하게 만들어낸 영화였다. 전작의 영향으로 이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무럭무럭 자라났던 이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영화였을 것이다.
 
6.
그런데 달리 말하면, 전작의 아드레날린을 생각하고 영화를 봤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더라. 전작은 정말 미친 듯이 터트리고 질주하는 영화였는데 이번 영화는 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였어.
 
7.
역으로 이 아쉬운 점과 연결해 흥미로운 생각도 하나 드는데, 이 영화의 구조에서 <조커> 시리즈의 두 작품과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전작을 부정하는 후속작 같은 느낌. 근데 <조커: 폴리 아 되>가 그렇게까지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이유는 전작을 부정하다 못해 살해하는 듯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퓨리오사>는 그렇게까지 심하게 전작을 혐오하진 않는다. 약간 혼자 고민해 보는 듯한 정도. <조커>에선 결국 주인공이 죽었고, 이 영화에선 결국 응징당한 것이 악역 디멘투스이니까.
 
8.
아무리 그래도 전작이 너무 쌔서 조금은 아쉽긴 했어... 사실 전작 <분노의 도로>도 사람들 입에 그렇게 많이 오르내린 것에 비해선 흥행이 조금 아쉬웠다고 하는데, 이번 영화 <퓨리오사>는 성적이 그때보다 더 아쉽다고 한다. 대놓고 인디 + 예술 영화 방향성을 가진 영화라면 굳이 이런 흥행 여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영화가, 특히 또 차기작이 예고된 바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흥행이 이렇다는 것은 여러모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지.
 
9.
그래도 어떻게든 다음 영화가 나와서, 게다가 그 비평이 앞선 두 영화와 같이 또다시 준수하다면, 이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줬기 때문일 거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시리즈물에선 세계관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든. 또 다른 40년을 위한 재건축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
 


인상 깊었던 장면 1

전작에 비해선 액션의 수량이 좀 아쉬웠지만 그 질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이젠 날아다니잖아!
 

인상 깊엇던 장면 2

(조금 억지 느낌은 있지만) 앞서 <조커> 시리즈에 비교를 했었는데, 이 영화의 악역 디멘투스를 보면서 <다크 나이트>의 빌런 조커 또한 생각이 났었다. 행동에서나 사상에서나. 전작 <분노의 도로>에서 주인공 맥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 퓨리오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번 영화 <퓨리오사>에선 주인공 퓨리오사보다 디멘투스가 더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