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을 보고 든 생각
1.
또 또 또다시 격주가 되어버린 일요감상회. 이렇게 영화보길 주저하게 되는 시즌에는 몇 가지 극약처방을 시도하게 된다. 이번 시도는 왓챠에서 내려가기 직전인 영화를 미리 선택해 놓기. 왓챠 구독권을 보유하신 분들께선 <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을 2024년 9월 9일까지 무제한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2.
정말 오늘까지 안보면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들.. 지는 않고 조금 비쌀 이번 주의 영화 <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리고 오타쿠라면 그림 한 장만 보면 누구나 알아차릴 유명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카우보이 비밥>을 극장판으로 옮긴 작품이다. 가히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함께 세기말 일본 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으로 볼 수 있을 만한 시리즈. 그리고 내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지 않았듯 이 시리즈 또한 안 봤다. 대신 캐릭터와 줄거리는 대충 안다. 나무위키를 많이 봤거든.
3.
물론 어디까지나 대충 아는 수준일 뿐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 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 또한 찾아보니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군.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오늘 본 이 극장판은, 위 주제를 2시간 정도의 분량에 압축시켜 놓은 듯했다.
4.
다만 조금 대사들이 현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더라. 사실 이 작품의 전반적인 톤과 매너가 그런 느낌이 있다. 나쁘게 말하면 허세인데, 정말 딱 보기 좋은 느낌의 허세라고 해야 할까.
5.
전반적으로 눈이 즐거운 작품이었다. 특히 주간으로 방영하던 TV 애니메이션이 극장으로 넘어왔을때 보여주는 그 아낌없는 동화 수와 과감한 시퀀스 배치 덕분에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기준으로 봐도 화려하다고 할 수 있을 영화였다.
6.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빠짐없이 강렬했기 때문에 이렇게 빠져들어 볼 수 있었던게 아닐까.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원작 시리즈가 있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를 4편... 아니 3편 리뷰했는데, 그 3편의 영화들 모두 저마다 원작의 캐릭터성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잘 요리해 낸 사례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직 팬서비스에만 치중된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강력한 원작 캐릭터성 탓이라고도 생각하거든. 그것을 그저 전시하기만 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기조차 못하느냐, 혹은 그걸로 이야기를 깔끔하게 써낼 수 있느냐.
7.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에서도 메인 빌런 캐릭터 오마츠리 남작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메인 빌런 빈센트가 인상 깊었다. 타이거JK 닮은 꼴로만 인터넷에서 몇 번 봐왔었는데...
8.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 하나가 생각나긴 하는데, 사운드트랙이 듣기는 참 좋았는데 가끔씩 좀 너무 전조 없이 등장하는 느낌은 있었다.
호접지몽(蝴蝶之夢)에 대한 테마를 가지고 있는 영화였다. 이 고사성어에 대한 벼락치기 끝에 찾은 문장은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러나,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하는데... 니체가 했던 말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 장면만큼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까지 끝난 다음 영화가 던지는 문장에서 강하게 느껴지는데, 비루한 현실을 사는 낭만주의자들, 다른 말로 오타쿠들에게 던지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타쿠라는 단어를 (처음 등장 시엔 좀 많이 부정적인 단어였겠지만) 요즘 들어선 마냥 나쁘게만 사용하고 있지는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