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감상회

<언더 더 스킨>을 보고 든 생각

언덕뵈기 2024. 5. 19. 12:36

조나단 글레이저, 2013

 

1.

제96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극장 가서 볼 생각은 없다. 절대 영화가 별로일 것 같아서 그러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극장을 좀 싫어해... 그래도 그 영화 자체엔 상당히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가끔씩 소재부터 엄청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런 영화들이 있거든. 아우슈비츠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 주변에 위치한 한 독일 장교의 평화로운 저택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니. 언젠간 반드시 보게 될 그런 영화처럼 보인다.

 

2.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할 때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의 수상 소감을 실시간으로 봤었다. 바로 이때. 그 우연한 시청이 영화와 감독에 대한 관심을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아이러니하지. 20세기 초 유대인 학살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 21세기 초, 오늘날 이스라엘이 보여주고 있는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수상 소감을 하다니.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소감을 읽는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3.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자면, 영화를 그렇게 많이 찍는 감독은 아니다. 1990년대에 데뷔를 했는데 올해 기준 장편 영화가 단 4편에 불과할 정도. 그리고 영화감독 이전에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도 유명하다더라.

 

어릴 때 라디오헤드에 강하게 꽂힌 시기가 있었는데, 이 뮤직비디오를 조나단 글레이저가 찍었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일단 오늘 <언더 더 스킨>을 보고 나니까 둘이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기는 해. 글 쓰면서 옆에 틀어놨는데, 아니 마지막 장면 기름에 불 붙이는 것도... 아무튼 그리고 자미로콰이의 <Virtual Insanity>라는 음악의 뮤직 비디오가 그렇게 걸작이라고 하더라고.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도 많이 됐었고.

 

4.

감독 관련 잡담을 많이 한 이유는 오늘 영화 <언더 더 스킨>, 이거 진짜 너무 어렵다는 뜻. 이렇게 미스터리하고 전위적인 영화들은 1년에 한 번이면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시도하는데, 그중엔 생각보다 이해가 잘 돼서 괜찮았던 영화도 있고 "뭔 소리여..." 싶어지는 영화도 있다. 그렇다. 이번 주 일요감상회 <언더 더 스킨>을 보고 든 생각, "뭔 소리여..."

 

5.

근데 마냥 진짜 아무것도 이해 못 했다는 것은 아니고, 어떤 감정이 느껴지고 어떤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그것이 너무 추상적이라 언어로 붙잡기가 어렵다는 의미에 가깝다. 꼭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일에 있어서 이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의견들이 많더라고. 이해하지 못하는데 뭐 하러 즐기냐는 느낌?

 

6.

생각해 보면, 의외로 영화 줄거리 자체는 쉽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매혹적인 여성의 모습을 취한 뒤 여러 남자들을 홀려 먹이로 삼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러다가 어느 순간 거울을 보더니 자기 자신조차 홀린 듯 이전과 다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고...

 

7.

제목이 꽤나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마지막 주인공의 피부가 벗겨지면서. 피부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영화는 마치 인간이라는 군집체의 껍데기 코 앞까지 다가가서 그 아래 품고 있는 것을 꿰뚫어 보려고 하는 듯하다.

 

8.

그 욕망을 유린하며 살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던 주인공 괴물조차 그것에 휩싸였다가 도망치고, 결국 소멸한다는 점이 인상 깊은 지점이었다. 사실 중반부까지만 해도 주인공이야 말로 피부 아래를 보는 시선을 가진 존재로 느껴졌거든. 병으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진 남자에게도, 마치 자기 눈에는 그 껍데기 속에 감추고 있는 것만이 보이는 듯이 다른 먹잇감에게 했을 말과 같은 말을 하는 장면이 그랬었다.

 

9.

영화 배경이 스코틀랜드인데, 억양들이 다들 신기했다. 일부는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는 거 맞긴 한가 싶을 정도. 근데 스코틀랜드의 자연경관이 나오는 장면 말고 도심이 나오는 장면은 마치 서울이나 대구 시내를 보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 그 형태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사람 냄새가 나는 느낌.

 

10.

어쩌다 보니 스칼렛 요한슨 출연 영화를 연달아 보고 있다. 말 그대로 연달아라고 생각 중이었는데 <루팡 3세: 더 퍼스트>를 내가 기억 속에서 지워놓고 있었군... 아무튼, 이거 다음 주는 <루시>를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평이 너무 엉망이라 그냥 안 보는 게 나을 듯.

 

11.

<언더 더 스킨>. 뭔가 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지만, 역시 어렵다.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이번엔 일부로 다른 리뷰도 안 보고 바로 글을 써보고 있는데, 그냥 보고 쓸 걸 그랬나. 한편으로는 평론 영상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영화들이 또 평론 찾아보는 재미가 있거든. 마치 식사 후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곁들이는 듯한 느낌.

 


인상 깊었던 장면 1

이 영화를 보면서 유일하게 피식했던 장면. 저 춤사위가 웃겼어. 근데 이 뒤에 나오는 장면은 진짜 끔찍해서 화면을 멀리 떨어뜨려놓고 봤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기괴했다. 의외로 징그러운 장면은 많이 없었는데, 이 장면은 좀 징그럽기도 했다. 그나저나, 괴물이 자신의 외형적인 매력을 도구로 삼아 남자를 유혹해 잡아먹는 장면은 이렇게 기괴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신비롭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데, 괴물이 자기 자신을 인식한 이후 남자와 관계를 맺으려는 장면에선 영화가 실제 성교를 가감 없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생각할 부분이 아닐까. 또 그것이 실패해 버린다는 점도. 아니 진짜 유치하게 하려면 사마귀인가 거미가 짝짓기 후에는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고, 비슷하게 묘사할 수도 있었을 거잖아.

 

인상 깊었던 장면 2

주인공이 거울을 통해 전기 히터 불빛에 도드라지는 근육과 신체의 굴곡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가 연상됐다. 나르시시즘의 어원. 주제가 주제다 보니 여성의 육체미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여러모로 보는 사람의 욕망을 건드리는 그런 영화였다. 욕망을 자극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치, 시비를 걸듯이 툭툭 건드린다고 해야 할까. 나쁜 의미는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