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감상회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든 생각

언덕뵈기 2024. 3. 17. 13:14

켄 로치, 2016

 

1.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영화를 봤다. 날도 온화하고 밝고, 지난 글에서 샀다던 그 맥북을 들고 그 햇빛을 받으며 글을 작성하고 있다. i-허세. 기분이 좋군. 맥북을 1주 정도 써봤는데 타자 칠 때 느낌이 좋은 것 같아. 아무튼, 오늘 영화는 지난주 언급했던 왓챠에서 곧 내려가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2.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의 영화 감독 켄 로치의 작품이다. 무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심지어 무려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받은 감독. 감독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이런 이력과는 별개로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메시지의 비중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것.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본 영화가 지금 이거 하나밖에 없는 상태라서 뭐라 더 평하가기가 어렵네.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하나에 대해서만 평가하자면, 좋은 영화적 연출의 힘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묵직하게 잘 전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아직까진 그 호불호 의견에 대해선 공감이 안된다는 말. 다른 영화를 더 찾아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

 

3.

이전에도 몇번 언급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유독 그 감독에 대해 더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또 동시에, 이건 약간 개인적인 버릇 같은 건데, 가끔씩 뜬금없이 특정 국가에 대해서 관심이 폭발하는 날이 찾아올 때가 있거든. 갑자기 필리핀에 대해서 막 찾아본다거나, 흑해 근처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고 그 나라들 안에 어떤 도시들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요즘엔 유독 영국과 아일랜드에 대해 관심이 폭발 중인 상태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이렇게 영국의 사회 문제를 사정없이 비판하는 감독을 만난 터라 관심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생기고 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가 아주 구미가 당기는군.

 

4.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보자.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음악의 사용이 아주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눈물을 몇 번이나 흐르게 만드는 스토리와 상반되는 무미건조한 영화 연출도 인상 깊었다. 이런 터치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메시지가 더 강조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5.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인물이 풀풀 풍기는 인간미가 아주 좋았다. 퉁명스러운 면도 있지만, 인정이 많은 인물. 꼭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뿐만이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도와주고 안아주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가 세워 놓은 벽이 너무나도 커다랗고 차갑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또 반대로, 사람들은 이미 다들 그렇게 더불어 도와주며 사회를 이루고 있는데 이 비인간적인 체계가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다니엘은 케이티의 아이들에게 양초로 방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양초만 가지곤 온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없지.

 

6.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처럼 최루탄 맞은 것 마냥 눈물을 펑펑 흘리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조금 눈물이 나더라. 감동보다는 안타까움에 흘리는 눈물. 결말도 참 씁쓸한 게, 여운이 남을 만한 영화였다.

 

7.

영화가 그리는 민원인에 대한 모습도 일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저런 비슷한 종류의 민원을 넣는 경험은 없지만, 살면서 몇 번은 어떤 일을 처리하기 위해 관공서에 간다거나, 전화로 문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나는 당장 이번 주에도 Apple 계정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전화 상담을 몇 번 진행한 바가 있다. 다행히 이 문제는 해결이 잘 됐지만. 운이 나쁜 경우에는, 이렇게 민원이 계속 체류된 상태로 머물 때도 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까 옛날 일이 갑자기 떠오르긴 하네. Apple 이야기를 할게 아니었군.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잘못이 없음을 증명해야 할 때가 오기도 하는데, 그 순간이 그리 달갑진 않지. 갑자기 개인사가 가슴을 후벼 파고 있는데, 점수를 0.5점 더 높여야 하나.

 

8.

아니 근데 결말 진짜 너무한거 아닙니까. 설마설마했는데! 흑..

 

9.

생각해보면 지난주에 봤던 <스포트라이트>와도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는 영화였다.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 다만 <스포트라이트>는 그 문제를 영화가 직접 고발한다기보다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을 비추는데 더 초점이 맞춰진 영화였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화가 직접 사회를 고발하는 기자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0.

다음 주엔 기필코 <설국열차>를 보리라. 영화 하나를 한 달이나 넘게 미뤄버렸네.


인상 깊었던 장면 1

이 장면은 그냥 보기에 즐거워서. 여기서 중국인 업자가 언급하는 선수가 EPL에서 뛰었던 찰리 아담인데, 나무위키에서 그의 문서를 찾아보니 아주 비범한 선수더라. 사실 이 장면보다 그 선수의 문서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웃겨서.. 찰장군이래 ㅋㅋ.. 치달, 사람 치면서 달리기 ㅋㅋ..

 

인상 깊었던 장면 2

위 장면 떠올리면서 실컷 웃었는데, 여기선 진짜 처량함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안타까웠다. 어떻게보면 좀 작위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영화가 오히려 이걸 너무 감정적으로 그리지 않으니까 그 안타까움이 배가되는 느낌.

 

인상 깊었던 장면 3

조금은 통쾌하기도 한 장면.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목과 직접 맞닿아 있기도 하고. 이 뒤에 나오는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는데, 감독이 캐릭터의 입을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다 토해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대놓고 실제 장관 이름 언급하면서 현 정부 저격이라니. 영화가 오직 그런 것에만 집중했으면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텐데, 영화를 잘 만든 덕분에 그 발언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영화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서, 사실 개인적으로도 이런 방향성에 대한 주장에 동의하는 바가 있긴 하다. 정치 성향이 어떻다고 딱 잘라 이야기하기엔 난 여전히 미숙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