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풀 8》을 보고 든 생각
1.
할리우드에 뛰어난 영화감독이 많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자기 색깔이 강한 감독은 흔치 않다. 어릴 때 영화 《킬 빌》이 이상한 컬트적 인기를 구사했던 기억이 있다. 커서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항상 믿고 보는 보증 수표였다. 이번 영화도 당연히 믿고 볼 수 있겠단 생각과 함께 리스트에 담아두었는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오래되었다. 워낙 볼 영화가 많은 세상이라서..
2.
《헤이트풀 8》은 미국 남북전쟁 이후 시기,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의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한다. 서부극 하면 나는 보통 황야와 뙤양볕이 떠오르는데, 새로운 느낌이 드는 배경이었다.
3.
그리고 그 배경을 통해 영화의 무대를 축소시키는데, 대부분의 이야기는 잡화점 안에서 진행된다. 밀실 안에 갇힌 여덟(사실은 그보다 더 많지만) 사람의 추리와 심리가 아주 흥미진진했다.
4.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항상 흥미진진하다. 내 취향에 안맞을 것 같은 영화라도 캐릭터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너무 재밌다. 거기서 무슨 심오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도 아닌데, 실실 거리며 보게 된다. 이런 게 바로 이 감독의 색깔이 아닐까.
5.
그리고 예측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처음엔 마치 두 현상금 사냥꾼이 주역이 되어 영화를 이끌 것 처럼 흘러간다. 밀실 속 증오에 가득 찬 8인. 언제든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쏠 수 있는 상황에서 주역이 될 것처럼 보였던 현상금 사냥꾼 한 명은 독이 든 커피를 마시고 사망한다(불쌍한 마부와 함께). 주인공과 반목하던 보안관은 최후까지 살아남아 주인공과 함께 일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추리를 모두 쓸모없게 만드는 깜짝 반전도 함께한다.
6.
아무튼 장르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서부극 + 추리 + 범죄 + 쿠엔틴 타란티노 정도로 할 수 있겠다.
7.
잔인하고 더러운 장면을 보여주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영화이기도 한데, 길이도 꽤 길어서 다 보고 나니까 좀 피곤하긴 했다. 사담이지만 전날에 여행까지 다녀와 피곤한 상태였어서 다 보고 자리에 일어나니까 몸이 너무 아파.
여기서 떠나면 이 여자의 목을 매달 것이라고 말하는 와중 옆에서는 저러고 있다. 행동 하나 하나가 "이 구역의 미친 X는 나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한 캐릭터였다. 등장인물 중에서 보안관도 다른 느낌으로 짜증 나는 캐릭터였는데, 둘이 끝까지 남아 다른 결말을 맞이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