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고 든 생각
1.
오늘 영화는 일전에 "내가 굳이 영화관을 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때 예시로 들었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말했던 바와 같이 전작을 아주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신작 소식에 굳이 돈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 가며 영화관에서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생활 패턴을 조절해 가면서까지 보고 싶단 생각은 들진 않았던 영화이다. TMI지만 실제로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도 보기 전 두통과 감기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마셨던 커피 한 잔, 물 한 잔 탓에 이뇨작용이 활발해져 화장실을 3번이나 다녀왔었거든. 아무튼 결국 이렇게 편한 장소에서, 편한 마음가짐으로 단 돈 2천 원 조금 넘는 비용으로 이런 명작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2.
이번 영화는 그 배경에 이야기할 것이 많아보인다. 국내엔 MCU로 유명한 마블 코믹스. 마블 코믹스의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캐릭터가 바로 "스파이더맨"이다. 그 외 이러쿵저러쿵 다들 알만한 이야기들.. 아무튼 21세기 들어 영화로도 자주 만들어지고 있다. 스파이더맨을 차례로 맡은 배우들 사이에도 그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탓에 몇 년 전엔 그 세 배우가 한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으로써 만난다는 역사적인 컬래버레이션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영화로써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이 큰 이벤트였다는 사실까진 부정할 수 없겠지.
3.
아무튼 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필두로 2020년대 초 미국 영화계의 핫한 아이템이 된 "멀티버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란 IP 자체가 유독 이 멀티버스 설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IP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코믹스에서 《스파이더버스》라는 멀티버스 이벤트로 성공을 거둔 결과가 지금 영화계에까지 번지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노 웨이 홈》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사실 《노 웨이 홈》보다 앞선 2018년에 그 포문을 열었던 영화가 바로 이번 영화의 전작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이다. 만악의 근원... 이 아니라, 사실 멀티버스는 그냥 소재일 뿐 영화만 잘 만들면 돼, 아무튼 말로만 이렇게 멀티버스 싫어하는 척 하지 《뉴 유니버스》로부터 시작한 이 시리즈를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고평가 하고 있다.
4.
멀티버스 유행의 포문을 열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 시리즈의 가치는 바로 압도적인 세련미를 지닌 아트 디렉팅 아닐까. 아무나 붙잡고 이 영화 때깔좀 보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영화의 제목을 구글링 해서 나오는 아무 이미지나 가져와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한 작품, 한 시리즈를 넘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나 넷플릭스 《아케인》 등 그 표현 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기 때문. 심지어 이번 작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런 후발 주자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장면들 하나하나가 폭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5.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와 별개로 이 영화엔 보기 전부터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파트 1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그 다음 후속작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가 파트 2.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한창 클라이막스가 시작하려 할 때에 끝나버린다. 멀티버스는 그냥 농담조로 싫어했지 이건 진지하게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은 요즘 영화계의 기조.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이 생각난다. 엄청난 기대를 안고 영화관까지 갔었는데, 뭔가 공허한 상태로 극장을 나왔고, 우린 아직도 후속작을 못 보고 있다. 이번 영화에 대해선 결말만 말하자면, 결국 이런 점 때문에 아쉬웠으나 역시 여전히 압도적인 비주얼이 이 공허한 마음을 봉합해 주는 느낌이었다.
6.
그래서 기분이 좀 묘하긴 하다. 좋은데, 아쉬워. 아쉬운데, 좋긴 해. 그것 때문인지 막상 이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그 배경 설명 하는데에만 문단을 다 써버린 느낌.
오늘은 인상 깊었던 장면 고르기도 힘들었다. 모든 장면들이 고르게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는 숫자 3을 좋아하니까 33분 33초에 나오는 아무 장면만 골라도 인상 깊은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어서 진짜 그렇게 해봤다. 이거 봐 얼마나 중요하고 이 인물을 잘 설명하는 장면이야. 근데 때마침 이 스팟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니 더 말을 이어보자면, 아주 재미있는 빌런 캐릭터였다. 나는 미국 코믹스의 빌런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단역 같던 존재에서 시작하는 서사를 좋아하나 보다. 특히 그 하찮던 캐릭터가 점점 터무니없는 압도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모습이. 꼭 빌런뿐만이 아니라 DC 코믹스의 배트맨도 사실 그냥 인간에 불과한데 갑자기 나무위키를 들어가 보면 만화 흐름에 따라 진짜 신이 되어있고 그러잖아. 얼핏 보면 터무니없어서 웃긴 모습인데 또 깊게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한 번 찾아는 봐야지 하고 다시 대충 둘러보면서 몇 개 골라봤다. 이 장면은 밈으로도 몇 번 본거 같다. 상황 자체가 상당히... 민망해. 아무튼 이 영화의 비주얼에 대해서만 너무 열심히 칭송한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적인 분위기도 좋았다. 영화의 분위기가 딱 스파이더맨스럽게 유쾌했다.
비주얼적인 부분을 조금만 더 칭송해보자. 전작부터 이어진 이런 방식의 표현들이 참 좋았다. 이 펑키한 캐릭터는 몽타주 기법으로, 인도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더맨은 코믹스 효과음 표현이 힌디어로. 뒤에 깨알같이 "Hobie?"라고 텍스트 처리한 것도 좀 봐봐. 그리고 그 모든 스파이더맨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상호작용한다. 눈이 호강하는 다채로움이었다. 찾아보면 "실크"라고 한국계 스파이더맨(스파이더우먼?)도 있던데 후속작에서 혹시 나올 수 있을 지, 다른 어떤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나와서 또 어떤 새로운 표현들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