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감상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고 든 생각

언덕뵈기 2023. 9. 17. 15:55

케네스 로너건, 2016

 

1.

엄청나게 슬픈 영화. 일단 글을 쓰기 전에 눈물부터 닦고, 마음부터 진정시키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

이번 영화는 리스트에 전부터 있긴 했지만, 최근 《오펜하이머》에서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가 기억에 남아 이번 주의 영화로 선택했다. 《오펜하이머》에서는 뭔가 맑은 눈의 광인 같은 느낌이 나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벤 애플렉의 형제로도 유명하고, 형제가 둘 다 유명하다니, 애플렉은 얼마나 좋았을까...

 

3.

https://www.youtube.com/watch?v=4gy1T-RFgVg

그리고 슬픈 영화라는 점도 사실 미리 알고 보긴 했다. 위 영상에서 먼저 접했기 때문. 그리고 주워들은 설명으론 한이 쌓여 흘리는 눈물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런 부류의 영화를 본 기억이 너무 까마득해서 긴가민가 했었다. 최근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던 영화는 《빅 피쉬》 정도가 생각나는데, 비슷한 느낌은 아니니까. "내가 그런 걸 보고 울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뭐...

 

4.

슬픔의 깊이가 아주 깊고 직접적이어서 영화를 보며 팔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5.

주인공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대하는 방법이 개인적으로 공감되어서 좀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나는 다행히 이런 수준의 비통함을 겪은 적이 없었지만.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나?

 

6.

아무튼, 주인공은 그런 인물이고, 그런 이유로 살던 도시를 떠났다. 하지만 형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자신의 고향 맨체스터로 돌아와 애써 피했던 그 슬픔을 다시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정확히는,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7.

그 끝에 아주 작은 희망을 보는 것 처럼 그려지는데 결과적으로 마치 그 유언장이 형의 마지막 배려처럼 느껴지기도.

 

8.

케이시 애플렉은 이 영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연기가 《조커》의 호아퀸 피닉스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데이루이스 처럼 아주 격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각본상으로도 주인공은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 자리에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 자리를 피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 후 주인공의 공허한 해소만이 나올 뿐. 그 해소에는 같은 폭력이라도 터진다는 느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시 애플렉은 이 인물을 연기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절제의 매력, 아이러니하게도 그 절제가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을 만들었다. 이런 연기도 있다는 것.

 

9.

의도한건 아닌데 2주 연속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작을 봤다. 내 영화 취향 자체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한/수상할 가능성이 높은 영화인 것 같기도.


인상 깊었던 장면 1

주인공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 비밀이 드러남과 동시에 앞으로 새로 겪게 될 괴로움을 알리기도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이쯤부터 눈물이 글썽거리며 시동이 걸린다. 영화 전체적으로 플래시백으로 과거 회상이 자주 섞여서 나온다. 과거 회상에 별다른 보정 등이 없어 오직 장면 안의 배경 정보로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게 된다. 계절이 다르고, 인물의 성격도 다르고, 조카 역할의 배우도 다르고... 아무튼. 그런 식으로 가감 없이 훅훅 들어오는 플래시백이 마치 과거가 아직도 주인공에게 얼마나 생경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장면 2

위 장면에서 나온 회상과 이어진다. 사실 주인공 본인의 바보같은 실수로 그 비극을 겪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 인물이 그저 징징거리기만 했다면 몰입이나 공감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주인공을 사로잡은 자기혐오, 그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던 다른 장면들까지 더 힘을 얻게 되었던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장면 3

조카에 대한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다. 일단 여자친구가 둘이야... 마냥 농담은 아닌데, 영화에서 조금 철없게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방어기제였으리. 갑자기 무너지곤 엉엉 운다. 대사도 마치 떼를 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