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을 보고 든 생각
1.
블로그를 시작하고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나온 영화를 본 적이 없구나.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긴 하지. 아무튼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내가 거의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다. 특별히 가장 좋아하는 배우 단 한 명을 골라본 적은 없지만, 누가 총을 겨누고 내게 선택하라고 묻는다면 다니엘 데이루이스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좋아하게 된 계기는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팬텀 스레드》. 하지만 그 《팬텀 스레드》를 찍고 홀연히 은퇴해버렸다니 마음이 슬퍼진다. 돌아와요 다니엘, 오스카 한 번 더 탑시다.
2.
《링컨》으로 배우중 최초로 오스카 주연상 3회 수상자가 된 다니엘 데이루이스. 지독한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에 따른 지독한 일화들도 여럿 있다. 그렇게 해놓고 연기는 그냥저냥이면 꼴값 떤다 싶겠지만, 그만큼 잘하는 걸 어떡해. 개인적으로 목소리가 진짜 신기한 것 같다. 일단 내가 본 영화마다 톤이 계속 바뀌던데 진짜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
3.
이 작품 안에서의 배우 이야기는 뒤에서 좀 더 해보기로 하고. 일단 감독이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다. 할리우드 감독의 상징 같은 존재.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 미국의 가장 뛰어난 대통령 중 한명으로 뽑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주연 배우도 그렇고 감독도 그렇고 마치 《링컨》을 만들기 위해 외부로부터 소집된 느낌이 드는 라인업. 주연배우는 영국인이긴 하지만 아무튼.
4.
전기 영화 하면 최근에 본 《오펜하이머》가 생각난다. 영화를 보고나서 한줄평도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게 나왔는데, 두 영화의 구조는 물론 많이 다르다. 《오펜하이머》에 비해 《링컨》은 비교적 짧은 기간의 일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남북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 수정 헌법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링컨 내각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 기간이 아마 한 달 정도 됐던가?
5.
그 과정 속에서 링컨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도 그려지고, 예를 들면 아들의 뺨을 때리는 장면. 많은데 하필 이게 먼저 생각나네. 아무튼 어찌보면 그 목표가 아주 숭고한, 이상적인 가치인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링컨의 모습이 나온다. 어느 정도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6.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게 이 영화가 링컨에 대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마치 인간 링컨에 대하여라고 하는 듯한 느낌.
7.
아주 좋아하는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연기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는게 즐거운 영화였다. 하원 의원들이 나와서 서로 모욕하는 장면이 특히 재미있었다. 의회 장면들은 뭔가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절차의 진행이 적당히 교양 있으면서 또 적당히 시장통이 되는데, 그냥 그 묘사 자체가 재밌었다.
8.
그리고 조금 어려운 영화기도 했다. 영화의 작법이 아니라, 배경 자체가 조금 진입장벽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면 모를까, 링컨이 일단 유명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따라가는 게 벅찼는데, 중간에 한 번 깔끔하게 정리하는 순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 장면이 내가 생각한 그 한 번 정리하는 순간. 1타강사 링컨. 작중에서 실없는 소리를 자주 하는 인물로도 그려지는데, 그 뒤에 이 사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설파하는 장면이 멋있었다.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고.앞서 말한 발성에다가 동작, 이목구비 까지 이 배우 말고 다른 누가 링컨을 연기할 수 있었을지.
얼마 전에도 느꼈지만 토미 리 존스도 참 연기로는 굵직한 배우야. 수정 헌법 13조,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당 안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인물 중 하나로 나오는데, 여기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살짝 굽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렇게 진심을 숨기면서도 상대방에게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린다. 다른 장면들에서도 항상 시니컬한 위트를 선보이는데, 이 영화에서 링컨을 제외하면 화면에 등장하는 것이 가장 기대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목적을 비로소 이루었을때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기도 한 숭고한 가치라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 아니었나 싶은 인물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 새디어스 스티븐스라는 인물이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흑인 가정부 한 명과 함께 살았다고 하던데, 아주 흥미로워지는 대목.